'Book'에 해당되는 글 28건
- 2011/12/06 이봐, 나랑 한번 놀아보지 않을래?-<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 2011/11/17 내가 여기 있어, 아이야-<라스트 차일드>
- 2010/08/31 작업가 탐닉 - <작업실 탐닉>
- 2009/11/10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할 노래들 - <밤은 노래한다>
- 2009/10/21 소녀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 관하여 - <프라하의 소녀시대>
- 2009/06/30 이 바람을 아이와 함께 -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2)
- 2009/02/24 벤자민 위버와 런던의 뒷골목 속으로 - <종이의 음모> (1)
- 2007/12/06 공허한 지식인에게 바치는 불편한 진실 - <타인의 고통>
- 2007/10/24 나 자신들과 마주하기 - <나무바다 건너기> (2)
- 2007/10/18 도코노의 아이들은 행복해졌을까 - <민들레 공책>, <엔드 게임> (2)
- 2007/09/02 루, 당신을 만난 건 축복이야 - <어둠의 속도> (1)
- 2007/06/12 활짝 피어날 이야기들을 조용히 기다려야지 - <빛의 제국> (1)
- 2007/05/21 디킨스의 꿈, 다이안 세터필드의 꿈 (6)
- 2007/04/29 문장들 사이를 유영하며 - <다다를 수 없는 나라> (3)
- 2007/02/11 아무도 어른이 되지 않는다 - <소라닌>
- 2007/01/31 언젠가 분명 보았던 그곳, 삼월의 나라 -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1)
- 2007/01/29 빛의 제국에 닿다 - <빛의 제국> (1)
- 2007/01/28 꼬마 알도로부터 배우다 - <알도와 떠도는 사원>
- 2007/01/18 잠 못들 오싹한(그러나 즐거울) 밤을 위하여 - <웃음의 나라> (6)
- 2006/12/29 '스릴러는 사랑이다'라는 명제의 증명 - <남편>
- 이봐, 나랑 한번 놀아보지 않을래?-<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 Book
- 2011/12/06 12:08
- 디 아더스 시리즈,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크리스토퍼 무어
제목 :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원제 : The Lust Lizard of Melancholy Cove
지은이 : 크리스토퍼 무어 Christopher Moore
옮긴이 : 공보경
출판사 : 푸른숲 디 아더스 시리즈1
출간일 : 2010년 7월
이런 마을 사람들이 우울증을 그렇게나 많이 앓았다고? 삶의 권태와 무료함을 이기지 못해 몇가지 약에 의존해 살았다고? 쉽게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8년이나 텃밭에서 대마를 키우며 대마초를 쉴새없이 흡입해야 살 수 있는 순경이 지키는 마을이니, 우울의 극치일 거라고 믿어보기로 하고 책장을 넘긴다. 이어지는 인물들이 심상치 않기는 했다. 청소강박증 아줌마가 자살을 하더니, 걸핏하면 사람을 물어뜯는 한물간 여배우가 아침마다 가죽 비키니를 입고 검술 훈련을 한다. 동네 약사는 상상이 안가는 변태이고 (말해 뭘해? 밤마다 돌고래 인형을 범한다는데), 정신과 의사는 급기야 모든 항우울제를 가짜 약으로 바꿔치기 한다. 의사가, 말이다!
그러니 바다괴물이 하필이면 이 파인 코브 마을에 나타난 것도 필연적인 결과라 하겠다. 'DNA가 세대를 거쳐 진화하는 게 아니라 세포 재생을 통해 진화하는 생물(299)' 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니.
바다괴물의 N극에 달아붙은 열 마리의 실험쥐처럼 코브 마을의 멜랑콜리한 주민들이 달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민달팽이 술집에 달라붙거나, 아니면 서로의 몸에 (혹은 자신의 몸에?, 혹은 돌고래에) 붙어먹거나. 핵공격이 휩쓸고 간 외지의 세계에서 정신줄을 살짝 놓았던 몰리가 이 바다괴물에게 연민을 느낀 것도 다 비슷한 이유일 터이다.
그러나, 어느새 페르몬이 넘쳐나는 거시기한 공기로 가득차버린 코브 마을이, 드디어는 진화를 시작한다. 그렇다. 블루스 가수라고 해도 블루스 정신만 가지고는 살 수 없는 거지. 무언가에 들러붙었던 정신머리들이 주변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더니, 한 다리 건너 있는 사람들을 궁금해하고 참견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뻔한 자살 사건을 혹시 살인 사건? 하고 의심하게 되고, 8년간 한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던 뒷동산 목장으로 발을 내딛었다.
몰리는 바다 괴물을 만족시켜 주려고 온갖 먹이감을 구하기 시작하고, 시오는 몰리가 궁금해 그녀의 비디오를 보게 되고, 메이비스는 시오를 돕기 위해 그녀의 노란 1956년형 캐딜락을 빌려주고, 캣피시는 메이비스의 차를 타고 바다로 가 블루스를 연주하고, 바다괴물을 그 음악 소리에 옛 기억을 떠올린다.
결국 이 멜랑콜리 마을의 우울증 치료제는 졸로프트 같은 항우울제가 아니라, 이 느슨하지만 강력한 연쇄 작용, 그래서 끊임없이 관계의 톱니바퀴를 굴려가는 추진장치였던 셈이다.
이렇게 수다스럽게 남의 일에 참견하게 되고, 성적 이끌림에 자기를 마구 내던지게 되면서 우울증이 온데간데 없어졌다는 말이지. 그래, 결론은 알겠다. 관계지향적 삶을 살라는 거지.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끼고, 누군가의 일에 참견하고, 누군가를 안아주고 입맞추며 살라는 말이렷다.
권태와 자기연민을 자각하고 온몸을 세차게 떨어, 덕지덕지 붙어있던 외로움의 껍데기를 다 털어 낸 바다괴물이, 결국 심해 속에서 동족 암컷의 메세지를 잡아낸 것처럼.
'이봐, 바다 사나이. 나랑 한번 놀아보지 않을래요? (425)'
그리하여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졌다는 괜찮은 결말.
덧붙임1.
보라색 표지에 데칼코마니 같은 나비의 날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처럼 보면 볼수록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는 것 같아서, 책을 읽다가도 다시 책장을 덮고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 책상 위에 올려둔 것만으로도 '나를 읽어줘, 어서 넘겨줘' 하고 유혹하는 듯 해서 사무실에서도 몇번이나 쓰다듬곤 했다. 기껏해야 두세장이 넘지 않는 작은 이야기 토막을 하나 읽고 표지를 보고, 하나 읽고 표지를 보고...
그러니 이 이야기들이 영화처럼 이어질 리가 없지. 띠지에 써있던 '미드 같은 소설'이라는 말은 나에겐 전혀 해당사항이 없었다. 영화화가 되길 바라지고 않고.
오히려 어릴적 가지고 놀던 카메라 장난감처럼, 작은 구멍에 눈을 대고 찰칵찰칵 셔터를 누르면 렌즈 안에서 현란한 그림들이 철컥대고 움직이며 변하는 듯한 경험이었다.
잘 만든 표지가 소설 분위기를 이렇게 야릇하게 띄워주기도 하네, 하고 감탄을 이어갔었는데, 글쎄, 원서 표지를 보고는 또 한번 깜짝 놀랐다. 이야.. 세상에. 이런 표지였으면, 난 절대 안 읽어!
덧붙임2.
수다스럽고 장황스런 미국 작가. 정신 사나워서 현실에서라면 사귀지 않았을 법한 사람들인데, 이상하게도 좋아하게 되는 몇몇의 이야기꾼이 있다. 이 소설로 크리스토퍼 무어라는 작가는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읽는 내내 조너선 캐럴이 생각 났다. 그러고 보니 <웃음의 나라>도 보라색 표지였네. 정신사납기로는 <나무 바다 건너기>에 버금가고.
- 내가 여기 있어, 아이야-<라스트 차일드>
- Book
- 2011/11/17 16:55
- 라스트 차일드, 존 하트
제목 : 라스트 차일드원제 : The Last Child
지은이 : 존 하트 John Hart
옮긴이 : 박산호
출판사 : 랜덤하우스
출간일 : 2011년 9월
혼자 남겨진 시간이 되면 조니는 언제나 집을 나간다. 열세살짜리 소년이 몰래 트럭을 몰고 마을 곳곳의 버려진 땅들을 찾아다닌다. 제발, 이제는 얌전히 좀 있어달라고 애원하고 싶을 만큼, 아이는 또다시 좀비처럼 깨어나 집을 나선다.
잭은 그런 조니를 종교처럼 따라다닌다. 더이상 자라지 않는 그의 한쪽 팔처럼 스스로는 자라지 못하는 아이, 잭은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조니를 쫒는다.
그리고 또 한 아이. 첫 등장부터 묘하게 눈빛을 잊을 수 없었던 소년 앨런. 잔뜩 상처받은 모습을 쿵쾅거리는 그런지 음악에 숨겨보려 하지만, 감춰지지 않던 깨진 유리같은 아이.
이것은 악몽같은 현실속에서 숨쉬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이 모든 아이들이 얼마나 겁에 질려 있는지 책장이 우울을 잔뜩 머금어 무겁다.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때의 절망감이 아이들의 눈동자에서 빛을 삼켜버렸다.
실제로 어떤 어른도 믿을 수 없었다. 사라져버린 아빠, 허물어져버린 엄마, 주변엔 온통 폭력적인 어른이나 무기력한 어른들 뿐이었다. 그러니 결국 아이들이 제 발로 찾거나 숨을 수밖에 없다.
참으로 절망스럽다. 어른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고작, 사람들은 선하지 않다 라니.
억지로 희망을 찾아보려 하진 않았다. 넌 용기있는 일은 한 거야 하는 말도 차마 나오지 않았다. 모든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무엇을 용서하고 무엇을 잊으라 할 수도 없었다. 다만 이 아이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들의 두 발로 서서 나가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어른인 나는, 내가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얘기해 줄 수밖에.
"내가 왔다 갔다고 말하지 말고, 지금 여기 있다고 말해줘요."(538)
- 작업가 탐닉 - <작업실 탐닉>
- Book
- 2010/08/31 10:22
- 세노 갓파, 작업실 탐닉
제목 : 작업실 탐닉원제 : 河童がのぞいた - 仕事場
지은이 : 세노 갓파 妹尾河童
옮긴이 : 송수진
출판사 : 씨네21
출간일 : 2010년 2월
단정하게 제목이 써있고 서서히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표지가 길을 가다가, 일을 하다가 간혹 생각날 정도였다. 책을 덮으면 단단한 만듦새를 손으로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띠지에 그려진 그림들을 오려둘까 생각도 했다. 아마 이 많은 작업실들을 내 발로 다녀오고,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내 손으로 만져본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게다.
그래서 한참을 보다보면 그림을 뱅뱅 돌려가며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동서남북 각 방향을 볼 땐 그 방향의 벽이 위로 향하도록 책을 돌리는 것. 아, 이 문으로 들어오면 책상이 바로 보이는구나, 이렇게 서서 복사를 하겠네, 이 앉은뱅이 책상에 앉으면 전화기가 바로 닿겠구나. 그러다보면 어느새 평면이 입체로 변하고, ‘지금 이 순간’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으로 변한다. 울컥하는 감동은 아니지만, 서서히 마음이 젖는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가며 썼을 누군가의 다짐이 생생하게 느껴져 책상 위에 붙어 있다는 메모지의 글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유쾌하게.(12)
그림이 이 책 최고의 미덕이지만, 세노 갓파의 글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재주가 있다. 막연히 ‘갓파’라는 이름 때문에 익살맞고 재치있는 글을 상상했었다. 기상천외한 일들을 종종 벌이고 다니는 전설적인 호기심의 대가라고 그를 소개하길래, 글도 요란스러울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 만난 본 그의 글은 오히려 명료하고 진지하다. 그가 비교적 잘 아는 분야의 전문가를 대할 때에나 잘 모르는 분야의 전문가를 대할 때에나 한결같다. 진지하게 탐구한다. 미리 준비하고 꼼꼼하게 묻는다. 그러다가 알았다. 이 사람, 정말 궁금했구나.
나는 그의 ‘놀이가 일이고, 일이 놀이다’라는 사고방식 속에 숨어 있는 성실함을 보았다.(256)
덧붙임 ) 이렇게 세상을 그리는 사람이 우리 나라에도 한 명 있다. 최호철. 삐뚤빼뚤한 선 안에 무수한 집과 무수한 차와 무수한 길과 무수한 ‘사람’이 있다. 이런 책 하나 안 내나 싶었는데, 역시나 근래에 나왔네. <최호철, 박인하의 펜 끝 기행>
-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할 노래들 - <밤은 노래한다>
- Book
- 2009/11/10 16:33
- 김연수, 민생단 사건, 밤은 노래한다
제목 : 밤은 노래한다지은이 : 김연수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출간일 : 2008년 9월
나는 고등학교에서 한국근현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역사 교과에 많은 과목이 있지만, 5년째 이 과목을 고수하는 이유는 우리의 근대사와 현대사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은 과목도 없기 때문이다. 개항 이후 변화와 두려움의 시대를 거쳐 울분에 가득찼던 대한제국기, 그리고 끝내 나라를 잃고 마음의 고향을 잃고 떠돌아야했던 비탄과 열망의 일제 강점기. 바라마지 않던 광복을 했으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좌절과 전쟁의 상처. 독재 정권에 짓밟힌 국토와 어리석을만큼 되살아나는 민주화의 움직임까지. 역사의 거대한 물살을 거슬러가다보면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그 물살 하나하나가 깨알같이 빼곡하게 사람의 얼굴로 채워져 있다. 내 수업의 목표이자 꿈은, 고고하게 보이는 역사의 물결이 사실은 인간 모든 삶의 총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 안의 인간들도 우리처럼 똑같이 우유부단하고 수없이 실패하며 작은 일에 울고 웃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그리하여 그들이 택한 무수한 선택들이 곧 그들 자신이며, 역사 그 자체임을 알게 하는 것.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그래서 간혹, 역사 교과에 있어서 나는 학자인가 이야기꾼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배우고 배워도 더 배울 것이 많고 배우면 배울수록 더 단단해진다는 점에서 학자인가 하다가도, 역사를 이루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눈에서 툭툭 붉어질 때는 이 이야기들을 다 전해주어야 하는 게 역사교사 아닌가 하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어느 면에서도 딱히 내세울 게 없는 역사 교사이지만,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 같은 소설을 읽으면, 아, 역시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고 살아야 하는 게 내 임무지. 하며 안도한다. 1930년대 저 먼 동만주의 벌판에서 무수히 번민하고 사랑하며 살았던 청춘들이 있었다는 것, 영국더기며 용정의 거리에서 어랑촌 조선인 소비에트에서 우리처럼 뜨거운 피와 말랑한 살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이런 이야기들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무엇을 더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산문집 <여행할 권리>에서 김연수는 이 소설의 준비에 대해 이렇게 썼다.
2003년 가을의 어느날, 나는 1930년대 공산유격대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목을 다루는 소설을 쓸 생각으로 마두도서관 이층 정기간행물실에 앉아서 1930년을 전후해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조선인들의 생애를 읽고 있었다....
예컨대 이런 것들. "함북 경흥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1908년 부모를 따라 길림성 화룡현 상천평으로 이주했다....1937년 10월 12일 화천현 납자산에서 제8군 제1사 내부의 배반자에게 살해당했다" 혹은 "함북 성진에서 소작농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33년 4월 민생단원으로 지목되어 현위 서기직에서 해임되고 11월 민중대회에서 총살당했다. 해방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로부터 혁명열사로 추인받았다."
이런 문장들을 읽는데 숨이 턱 막혔다. 이건 내가 도저히 쓸 수 없는 소설이 아닌가. 내가 어찌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내부의 배반자에게 살해당하거나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간첩으로 오인받아서 동지들에게 총살당한 사람들에 대해서 쓸 수 있단 말인가. 1970년 지방소도시 빵집에서 태어나 별다른 굴곡 없이 인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도저히 그들의 삶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더이상 복사해서 노트에다가 짧은 생애를 붙이는 일을 그만뒀다. (129)
물론 나도 그들의 삶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민족주의자니 공산주의자니 국제주의자니 하는 규정 속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라니. 빼앗긴 조국을 떠나 중국 땅에서 중국의 일부도 되지 못한 채 잃어버린 조국을 위해 또다른 남의 나라, 일본과 싸워야 했던 사람들. 도대체 그들에게 적은 어디까지이고, 동지는 어디까지일까. 이 가늠할 수도 없는 막막한 어둠을 '세세하게 여러 결로 나눈 뒤 그 차이를 구분해 갈 길을 찾아 준' 소설가가 있어 참으로 고맙다. 그들의 삶을 복원하는 일, 저마다의 서사를 가진 이야기로 그들을 되살리는 일이 바로 역사를 가르치는 일일 터이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매몰된 나약한 개인의 삶이라고 해도 좋다. 우리 또한 그런 존재일 테니. 이 많은 이야기를 교과서의 한줄 서술로 마감하기엔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이 소설 곳곳에 배어 있던 절망의 냄새, 체념의 냄새 그리고 열망의 냄새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고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알게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다는 점에서, 1927년 낡은 세계를 부숴버리겠다며 밤마다 영국더기 동산교회에 모여 열에 들뜬 목소리로 혁명을 떠들어대던 네 명의 중학생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뒤질세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서둘러 선언했지만, 그들은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건 당신도, 나도,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빼앗기고 남의 땅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를 꿈꿀 수밖에 없다. 주인만이, 자기 삶의 주인만이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꾸지 않는다.(247)
- 소녀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 관하여 - <프라하의 소녀시대>
- Book
- 2009/10/21 21:40
- 요네하라 마리, 프라하의 소녀시대
제목 : 프라하의 소녀시대원제 : 噓つきア-ニャの眞っ赤な眞實 (2001)
지은이 : 요네하라 마리 米原万里
옮긴이 : 이현진
출판사 : 마음산책
출간일 : 2006년 11월
격동의 혁명 속에서도,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잔혹한 독재의 그늘에서도 아이들은 자란다. 시기와 질투, 잦은 웃음과 온갖 것들에 두근거리던 소녀들도, 그 소녀다움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언제 깨져 버릴지 알 수 없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하루하루이기 때문에 더욱더 소녀다움이 간절할지도 모른다. 절박한 소녀다움이라고 해야 할까. 성숙해져버린 소녀다움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시대를 관통해 온 네 소녀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한 소녀는 조국을 등진 아버지를 따라 고국의 푸른 하늘을 그리워하며 자랐다. 이념적 고향을 잃은 후엔 마치 보트피플처럼 이 나라 저 나라를 기웃거리며 살았고, 오랜 세월이 지나 돌아간 고국은 그리던 고국의 모습이 아니었다.
두번째 소녀는 순결한 루마니아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늘 조국에 빚진 마음으로 살았다. 더 큰 목소리로 애국심을 충성심을 보여야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여겼던 소녀는 끝까지 조국의 현실과 진실을 들여다 보지 못했다.
세번째 소녀는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에서 치이고, 편협한 민족주의와 종교에 치이다 결국 전쟁의 한가운데에 떨어져 버렸다. 공기가 되고 싶다던 어른소녀의 머리 위로 오늘도 폭격이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 소녀는 이상을 꿈꾸며 살아온 아버지를 무한히 존경했고, 그 이상을 소녀시대에 두고 왔다. 십대를 보냈던 체코의 소비에트 학교를 잊을 수 없던 소녀는, 그 소녀시절의 언어로 세상을 누비는 통역사가 되었다.
이 책은 소녀 시절의 친구를 찾아가는 다큐멘터리이자, 60년대부터 시작된 동유럽과 소련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서이기도 하고, 역사 앞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역사 속에서 아이가 어떻게 어른이 되어 가는지를 묻는 인문학서이기도 하다.
특히, 차우셰스쿠 이후의 루마니아나 유고 연방의 해체와 뒤따른 전쟁들에 대한 설명은 관련된 어떤 역사서보다도 통찰력있고 인간적이다. 역사의 변화는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어떻게 달라지게 만드는지, 그들의 사고를 얼마나 기울어지게 만드는지, 각기 다른 곳에서 30년을 보낸 세 소녀가 대답하고 있다. 그래서 30년만에 세 친구들 만난 요네하라 마리는 기쁘지만 또한 슬프기도 했다. 아니, 안타깝고 속상하고 애잔했을 것이다. 만만치않게 굴곡많은 역사를 살아온 대한민국의 그 시절 소녀들을 보는 우리의 마음처럼.
또한 미안하기도 했겠지.
확실히, 사회의 변동에 제 운명이 놀아나는 일은 없었어요.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른다면 행복은 저처럼 사물에 통찰이 얕은, 남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을 만들기 쉬운가 봐요.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상을 그녀들이 보냈다는 것에 대해서. 혼자서 행복했다는 것에 대해서.
대학을 다닐 때 과 신문에 이런저런 글쪼가리를 실었던 때가 있었다. 언제인가 한 선배가 말했다. 글이 무뎌졌구나, 너.
그랬다. 어느 틈엔가부터 세상의 첨예한 각이 보이지 않았고 눈여겨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은 자잘한 가시들이, 그 가시투성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성의껏, 세삼하게 들여다 봐야 하는 일들이 귀찮아진 것이지. 제법 편안한 삶을 살다 보니. 통찰력이고 상상력이고 다 스스로 내려놓고 말았다.
스스로에게 아킬레스건이 되어 버린 이야기가 요네하라 마리의 이 말 때문에 다시 생각났다. 이 말이 뒤통수를 쪼아대는 것 같아 좌불안석. 아, 이래서 사적인 책읽기는 늘 쉽지 않다.
- 이 바람을 아이와 함께 -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 Book
- 2009/06/30 18:07
-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오소희, 터키 여행
제목 :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지은이 : 오소희
출판사 : 북하우스
출간일 : 2009년 4월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 내 삶은 조금 변했다. 조.금. 이라고밖에 쓸 수 없는 것은, 아직도 개인적인 내 시간에 대한 욕심을 거의 포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감사한 시어머니 덕에 육아에 관한 대부분의 의무를 행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처럼 아이를 위해 희생하며 살지도 않은 내가, 삶이 조금 변했다고 얘기하는 게 스스로도 민망스럽다. 앞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점에서 더욱 민망스럽다.
그래도 달라졌다. 물리적인 생활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태도, 사람들을 보는 태도, 세상을 보는 태도, 삶을 보는 태도가 달라졌다. 오소희, 그녀가 말했듯이, 이전엔 남과 다른 것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남과 같은 것에도 진심으로 눈물이 나올 때가 있다.(272) 이제 겨우 10개월된 아이를 가진 초보엄마일 뿐이니 경이롭다는 말까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문득 놀라울 때가 있다. 아이를 통해 바라본 세상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이 놀랍고 아름다운 세상을 얼마나 보여주고 싶은지. 중빈이가 "엄마,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 하고 말할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벅찼을지 알고도 남겠다.
한 사람이 아니라 1.5인분의 사람이 되어 산다는 것은 분명 기쁘고 벅찬 일이지만, 또 얼마나 버겁고 두려운 일인가. 아이의 해맑은 눈을 볼 때마다 앞으로 이 아이가 만나게 될 세상은 때론(아니, 대부분은) 비인간적이고 삭막한 곳이라는 걱정이 떨쳐지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무사히, 온전히 자라난 것이 새삼 놀라울 만큼 아이의 앞날이 걱정되고 또 걱정된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이 모든 두려움을 책임지고 가라는 뜻이었을텐데, 나는 참 별다른 준비도 없이 아이를 맞았구나 하는 자책까지 덧붙여.
그러나 이 모든 수심들도 엄마가 되는 통과의례 중 하나였던 모양이다. 어느새 넘겨진 책장에서 선배엄마인 그녀가 이렇게 말한다.
물론, 나는 이 정도로 자라지 못했다. 만족할만큼 무조건적인 사랑을 아이에게 보내지도 못했고, 화해와 치유의 시간을 오롯이 갖기엔 아직도 번잡스러운 구석이 많다. 하지만, 나도 10개월이 막 지난 아들과 함께 흙을 만지고 개미를 만지고 돌맹이를 만지고 싶다. 아이를 그네에 태우고 별님과 인사하고 싶고, 털썩 잔디에 앉아 놀고 싶다. 그래서 아이가 느끼게 해주고 싶다. 꽃잎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고양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나눔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
그러니 중빈에게 한 그녀의 말은 내가 내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들아, 세상에는 유희가 생략된 유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도 있단다. 따스함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단다. 네게는 세 살부터 시작된 이런 여행이, 한평생을 다해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사치가 되는 사람들이 많이많이 있단다. 나는 네가 그런 사람들을 부단히 많이 보아서, 끝없는 속도전에서 비롯되는 초조와 이기심으로 차갑게 마음이 식어버렸을 때마다 스스로 발광하는 태양처럼, 스스로 네 마음을 뜨뜻하게 덥힐 수 있기를 바란다. 가진 것을 느끼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부터 나누고, 함께함으로써 더 많이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융숭 깊은 사람으로 자라주렴. 네가 살아 있는 한 온 세상이 너의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담그고 느끼거라. 그 안에 네가 안아줄, 너를 안아줄 모든 것이 다 한데 어우러져 있단다.(342)
- 벤자민 위버와 런던의 뒷골목 속으로 - <종이의 음모>
- Book
- 2009/02/24 00:23
- 데이비드 리스, 종이의 음모

제목 : 종이의 음모원제 : A conspiracy of paper
지은이 : 데이비드 리스 David Liss
옮긴이 : 서현정
출판사 : 대교베텔스만
출간일 : 2006년 10월
런던의 매력적인 옛모습, (오줌 냄새 풀풀 풍기는 칙칙한 골목마저도 매력적으로 보이다니)
좀도둑이나 외상값 떼먹은 놈들이나 잡으러 다니는 옛탐정,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냐)
18세기의 위조 주식 사건이라는 신선한 소재와 친절한 설명 (금융스릴러라길래 어려울까봐 겁먹었었지만)
모두 즐거운 경험이었던 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얇은 책을 2권으로 분권한 대교베텔스만이 괘씸해서 맘보를 고약하게 먹었었다.
표지 디자인이 좋길 하나, 장정이 멋지길 하나, 뭐 하나 이렇다하게 만족스럽지도 못하면서 나오는 책마다 매번 분권을 해대니 좋게 볼래야 볼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래서 왠만하면 여기 책 안볼려고 하고, 리뷰는 더더욱 안쓰려고 했건만, 에이, 대교베텔스만 출판사~ 이번엔 운이 좋았다. 재밌는 책 덕에 오늘도 연명하고 있구나. (으... 이번엔 내가 졌소이다)
에이, 악다구니는 여기까지.
2권의 후반부부터 사건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자 벤자민 위버에게 급격하게 동화되더니, 금새 호흡까지 격해지고 야단이었다. 어~ 헉~ 했다가 앗~ 이럴수가~ 하다가, 어서 가야해~ 이런 나쁨 놈~ 하면서 마구 페이지를 달렸다. 이야기가 끝맺을 때까지의 이런 몰입의 경험이 리뷰를 쓰게 된 첫번째 이유이다.
이 흥미진진한 사건을 끌고 가는 벤자민 위버라는 남자는 유대인으로 잘나가는 권투선수였다가, 한때 어두운 뒷골목을 누비는 도둑이었다가 현재는 도둑을 잡거나 물건을 찾아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직업을 전전한 이력도 매력적이지만, 그런 이력 덕인지 자신감과 자긍심이 약간 넘친다. 귀엽기까지 한 위버의 거들먹거리는 말투가 리뷰를 쓰게 된 두번째 이유이다.
매력적인 주인공에게는 필연적으로 매력적인 벗이 있기 마련. 돌팔이인지 아닌지 심하게 헷갈리는 엘리아스가 바로 그 친구인데, 위버와 엘리아스 콤비는 코고쿠 나츠히코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키구치와 에노키즈 콤비와 감히 견줄 만하다. 위버에게 잔뜩 화가 났던 엘리아스는 위버가 내민 돈을 보더니 '오늘 아침보다 자네를 미워하는 마음이 한결 줄어든 것 같네' 라고 하길래, 아 리뷰를 써야겠군 하고 세번째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리뷰를 쓰게된 마지막 쐐기는 이것이다. 1720년 남해 회사의 거품 붕괴를 설명한 대목이다. '1720년 여름, 런던이 제정신을 차리면서 '어째서 주식 가격이 이렇게 높아진 거지?"라고 자문하게 되었고, 그 순간 마치 마법에서 깨어난 듯 종이돈을 만들던 사람들은 현물을 찾았고, 막연한 약속을 현실로 바꿨다. ' 이게 정말 1720년의 이야기란 말이야?!
- 공허한 지식인에게 바치는 불편한 진실 - <타인의 고통>
- Book
- 2007/12/06 16:04
-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제목 : 타인의 고통원제 :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2003)
지은이 : 수전 손택 Susan Sontag
옮긴이 : 이재원
출판사 : 이후
출간일 : 2004년 1월
타인의 고통이 참혹하게 표현된 사진들을 보면 그 상황을 이해, 나아가 공감할 수 있는가.
이해하고 공감한다면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가.
그들의 고통의 실마리는 잡고 더듬어 가다보면 그 끝에 당신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고통스런 상황, 특히 전쟁의 고통과 참화를 찍은 사진을 보며 그 잔혹함을 공감해보면 우리는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이 '교육받은 계급'인 우리는 그럴 수 있다고 믿어왔고, 그를 위해 많은 사진들이 이용되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수전 손택이 묻는다. 정말 그러하더냐고. 참혹한 사진들이 중첩될수록 연민은 연민일 뿐으로 가라앉고 천천히 무뎌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그 정도에서 끝났다면 그녀의 글에 마음편히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온화하지만 예리한 눈초리로 한번 더 묻더라. 피부색도 다르고 눈동자의 색도 다른 사진 속 그들을 보면서 그들을 타자화하는 사이, 아, 나는 역시 가해자가 아니야 하는 안도감 속으로 숨어버리고 있지 않느냐고. 어쩜 우리가 그 고통스런 사진을 보는 것은 나는 안전하다는 것을, 나는 그들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는 '교육받은 계급'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당신에게 고통을 주지는 않았지만, 당신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증오해, 당신이 고통받아서 너무 안됐어 하는 마음?
하, 이거 고약하다. 행동하지 못하는 지식인에게 지식이 다 무슨 효용이며, 진보가 다 무엇이냐 하는 회초리구나.
그녀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한번 더 쐐기를 박는다. 당신이 타인이라고 인식한 그들의 고통 끝에 당신이 있을 수도 있다고. 당신이 바로 가해자일지도 모른다고. 당신이 알든 모르든, 당신의 고의였든 아니든 말이다.
내가 마시는 커피, 내가 신는 신발, 내가 입는 옷에 수많은 바나나 리퍼블릭의 아이들이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은 언제나 뼈아픈 사실이지만, 실천은 못할지언정 잊지는 말아야지.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기억하기와 상기하기 , 사색하기를 이야기한다. 연민만으로 끝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고맙게도 그녀는 내게 어떤 행동을 하라고, 어떤 실천을 하라고 강요하진 않는다. 단지 사진 그 자체는 상황을 이해시켜 주지도 앞으로의 방향을 말해주지도 않으니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살펴보라고 할 뿐이다.
W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그 프로그램을 혀를 차며, 가끔을 눈시울까지 적셔가며, 분개하며 보고 있는 내 모습을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자. 프로그램이 끝난 후 나는 어떻게 하는가.
- 나 자신들과 마주하기 - <나무바다 건너기>
- Book
- 2007/10/24 15:32
- 나무바다 건너기, 조너선 캐럴
제목 : 나무바다 건너기원제 : The Wooden Sea
지은이 : 조너선 캐럴 Jonathan Carroll
옮긴이 : 최내현
출판사 : 북스피어
출간일 : 2007년 9월
뭔가 크게 잘못하고 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나는 달라지고 싶었다. 되고 싶은 나가 되기 위해서 노력한 시점이란 게, 단절적으로 존재했다. 특별히 부정한 건 아니었지만 어느샌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나를 지워갔다. 기억들은 토막토막이 났고, 실제 하얗게 지워져 버린 (지저분한 지우개 자국을 남기고) 기억들도 늘어갔다. 생각보다 심각한 징후를 보이기도 했다. 대학 때 우리과로 편입해서 들어온 고3때 같은 반 친구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제법 친하기도 했던 거 같은데, 정말 까맣게 기억이 나질 않았던 당황스러움. 아, 내가 이렇게 살아왔구나. 과거의 나는 포르말린 냄새가 가득한 유리병에 갇혀 어두운 실험실 구석에 버려졌구나.
이런 나에게 열일곱의 내가 찾아온다면? 열살의 내가 찾아온다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한다고 나를 다그친다면? 나는 과연 프래니처럼 때때로 밀려오는 그 시절의 반짝거림에 감동할 수 있을까? 과연 열일곱의 나는, 열살의 나는 반짝거렸을까?
월드 머신이 어쩌고, 외계인이 어쩌고, 인류를 구해야 한다느니 어쩌구 하는 이야기들은 외눈박이 개새끼나 들으라지. 세상에 이렇게 지맘대로인 외계인이 어디있냐고. 첨엔 내눈에만 보이는 거라고 그랬다가 이젠 남들 눈에도 다 보이고, 분명히 마흔일곱의 나이로 이곳에 왔는데 다들 어린 시절의 나로 알아본다. 아~무런 규칙도 이유도 없는 시간여행이다. 세상을 구원할 히어로가 되라고? 믿을 수가 없어. 당췌 신뢰가 안가는 외계인들이다.
가장 어이없던 장면은, 마치 기록 필름을 돌리듯 천천히 창문밖 세상이 30년 전에서 현재로 변화하는 장면이었다. 풀이 자랐다가 잘렸다가, 그네가 놓여져 있다가 화분이 놓여져 있다가 하며 사르륵 시간이 흘러갔다. 그걸 유리창 너머로 보는 기분이란, 노스탤지어 라는 말 만으론 설명이 안되는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변화하고 있는 거리를 지나 친구네 집으로 가야하는 일이 생겼는데, 주인공은 차를 타고 갈 수 없었다. 왜냐. 거리가 변하는 속도보다 차의 속도가 더 빨라서, 친구네 집이 아직 현재로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게 말이 되냐고. 이런 것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허술한 외계인들이 시간 여행은 어찌 한다니. 어이구, 못미더워.
그러니, 프래니가 움직인 이유는 세상을 구한다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불쑥 찾아온 과거의 나를 대면하는 일, 30여년 전 내 동네를 다시 걸어보는 일,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져버린 미래를 들여다보는 일에 동요하기 시작하면서 프래니도 이 일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때론 매우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젊었던 내 아버지를 만나, 스테레오 타입이었던 아버지의 삶이 사실은 웃지 못할 비밀투성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같은 거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종종 잠언이 된다. 그동안의 이 작가의 글로 보건대 절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낯간지럽게도 조너선 캐럴은 '네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모든 자아를 살려두라'로 얘기한다. 아아. 왜 이러시나 하고 좁쌀같은 닭살이 돋으려는데, 전혀 조너선 캐럴스럽지 않은 이 책의 어느 대목에서부터, 나는 나사가 빠진 듯 멍하니 있었다. 너 자신을 알라, 가 아니라 너 자신'들'을 알라 라는 대목에서 말이다. 단지 어른의 시간여행 이야기로 끝났을 지도 모를 이 판타지가 일종의 철학서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프래니가 종국에 만난 것은 자그마치 다섯 명의 프래니였다. 그러나 그들 뒤 깊은 숲에서 더 많은 프래니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난 이제 안다.
수많은 '나'가 지금의 나를 만들고, 또한 수많은 내가 될 것이라는 사실. 나의 역사는 긴 끈을 이어가듯 한 가닥의 선으로 주욱 이어진 게 아니었다는 사실.
그래서 프래니의 무덤에 흙 한 삽을 퍼넣고 있는 지지 (또 다른 프래니)는 눈을 슬쩍 돌리고는 나를 채근한다.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의 수많은 나 자신들을 잊지 말라고, 그들을 박제로 만들지 말라고. 그들의 모습이 알알이 박혀진 채로 너는 이렇게 잘 자라왔다고.
아, 나는 마주할 수 있을까. 어쩌면 반짝였을지도 모를 나의 과거들이 저-기 바람결에 펄럭이는 커텐 너머에 서 있는데, 나는 두손을 내밀고 맞아줄 수 있을까. 열일곱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곤 반짝거리고 있다고 말을 해 줄까?
사실을 말하자면 아직도 나는 망설이고 있다. 프래니처럼 웃으며 눈감을 수 있는 자신감 같은 게 없다. 하지만 아스토펠이 말했듯이 여러개의 구슬들이 만들어 낸 일련의 패턴이 나의 현재라면, 이제 그 구슬들이 각각의 색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모두 자신의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는 걸 이제 막 알았을 뿐이다.
잡념은 여기까지. 이 밑은 북스피어 출판사의 이스터 에그에 관한 것임. -------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갑자기 페이지 윗부분에 잘려진 개의 하반신이 보이는 게 아닌가. 헉. 이 사람들 또 숨겨놓았구나.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북스피어 라는 출판사를 좀 특별한 출판사로 기억하고 있는 건 바로 이 이스터에그 때문이었다. 이야기로서의 책의 세계를 독자의 세계로 확장시키는 장치. 이 이야기를 즐겁게 읽은 사람들 간의 비밀스러운 교감.
이번에 이 강아지, 아니 개새끼를 잘라놓으셨구나. 킥킥 대며 책장을 넘겼다. 아니나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옆 귀퉁이에서 개의 얼굴을 찾았다. 좋다고 웃고 있었는데, 이 상반신과 하반신을 이어붙여 보아도 뭔가 그림이 안된다. 가만 보니 가운데 토막이 빠졌다. 담배 물고 팔짱끼고 있는 부분이 없는 거다. 어.. 분명히 못 봤는데... 이럴수가. 다시 첨부터 책을 다시 봤다. 책 읽는데만 3일 걸렸는데, 이 녀석의 가운데 토막 찾느라 하루를 꼬박 더 썼다.
아무리 봐도 없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자, 나는 공실공히 미스터리 문학의 팬이잖아. 추리를 해보자구. 하반신은 페이지 윗부분에 있었고, 상반신은 페이지 옆부분에 있었다. 그렇다면 가운 토막은 페이지 밑부분?? 열심히 뒤졌다. 그러나 역시 못찾았다. 그럼 가능성은 한 가지. 가운데에 있는 거다. 페이지와 페이지가 만나는 가운데 부분. 눈여겨 유심히 벌려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부분인데 설마 여기에 두었을까 싶기도 했지만, 개새끼를 토막내서 넣어둘 정도면 이 사람들, 그러고도 남는다. 그래서 열심히 책을 벌려서 한장한장 수색을 했다. 책 등허리가 다 휘어지도록 찾았으나 역시 못찾았다.
그래서 지금 출판사에 따지러 갈 참이다. 가운데 토막은 어디에 있나요? 제가 못찾은 거라면 다시 한번 열심히 찾아보겠습니다. 혹 가운데 토막은 없는 건가요? 상반신과 하반신을 붙여봐야 불구 개새끼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신 건가요? 흑흑 왜 그러셨나요? 설마... 인쇄상의 오류 때문에 조각난 그림이 들어갔다는.. 그런 끔찍한 얘기는 안하시겠지요??? 책등이 휘도록 살펴봐서 책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책임지라고, 새책 한 권 더 내놓으라고 협박이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무슨 책이 아무리 휘어도 이렇게 멀쩡한 건가요??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여 200%더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하실 건 아니죠?? 엉엉엉.
- 도코노의 아이들은 행복해졌을까 - <민들레 공책>, <엔드 게임>
- Book
- 2007/10/18 19:06
- 민들레 공책, 엔드게임, 온다 리쿠

제목 : 민들레 공책, 엔드 게임원제 : 蒲公英草紙, エンド·ゲ-ム
지은이 : 온다 리쿠 恩田陸
옮긴이 : 권영주
출판사 : 국일 미디어
- 도코노 시리즈 2,3
출간일 : 2007년 7월
<민들레 공책>의 첫 장은 아련한 옛 시절의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어린 시절의 꿈빛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이야기.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사토코 아가씨. 믿음직한 마을의 어르신 마키무라가의 당주. 악동이지만 애틋했던 히로타카 님. 언제나 새로운 소식이 넘치던 그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식구가 나타난다... 라.
의아스럽게도 이야기하는 사람은 도코노 일족인 히로타 가족이 아닌 미네코라는 꼬마 아가씨이다. 히로타 가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담아내야 하는 숙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보니,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웠을 테지. 그러나 실은 도코노 일족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 입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삶을 살아낼 수 없는 사람들이다. 다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온 몸으로 기록하고 담아낼 뿐이다.
오히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불안한 시대, 안전하지 않은 삶이다. 말도 안되는 대의 명분으로 힘 없는 사람들을 전쟁으로 내몰던 시대. 주변에서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증오와 원한만이 깊어져 자기 삶마저 망쳐 버리던 시대. 아귀같은 시대에서 삶의 진정성을 잃어버린 시대. 그리고 그 물결 속에서 붙잡을 풀 한 포기 찾지 못하고 떠밀려 가는 사람들. 그들이 주인공이다. 침대켠에서 책을 읽다가 스러져 가는 사토코를 보면서 기어이는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던 건, 비단 사토코 뿐만 아니라 그렇게 정처없이 끌려가버린 많은 사람들의 삶이 불쌍해서였다. 이 모든 상황이 그렇게 끝맺을 수 밖에 없었음을 예상하고 있었으면서도 그들이 측은하고 또 측은하여 통곡을 했다.
"이 나라는 내일도 계속되는 걸까요. 이제부터는 새로운, 훌륭한 나라가 되는 걸까요.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나갈 터였던 나라는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요.
미쓰히코를 만나고 싶어 못 배기겠습니다. 그때 미쓰히코가 저에게 했던 질문을 이번에는 그에게 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이제부터 이 나라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인지 그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 절망감을 어찌할까. 그리고 책 너머에서 숙명처럼 이 절망감을 온전하게 몸에 다 담아내야 했던 하루타 일가를 어찌할까. 그들의 서랍에 이 인생들을 담아내는 동안 솜털까지 파르르 떨리며 절망스럽지 않았을까.
전쟁 같던 시대를 살아간 도코노 일족의 이야기가 <민들레 공책>이었다면, <엔드 게임>은 삶 자체가 전쟁이던 도코노 일족의 이야기이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다만 뒤집히지 않기 위해선 '그것'들을 뒤집어야 할 뿐이다. '그것'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다만 사력을 다해 뒤집히지 않기 위해 뒤집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오셀로 게임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은 흑과 백의 말 중 어느 하나일 테고, 같은 편으로 주르륵 둘러싸면 휘리릭 하고 뒤집혀 버리는 게임처럼 언젠가는 모두 하나의 색깔이 될 거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뒤집혀 다른 색깔의 말이 되어 버리는 거라고.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이것은 오셀로 게임이 아니다. 늘 쫓겨다니는 고통의 삶은 그들에게서 게임의 방법과 규칙을 빼앗아가 버렸다. 그들에게 남은 건 그저 뒤집는다는 행위 뿐. 그 색깔이 흑이든 백이든 상관없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계속해서 뒤집고 뒤집고 뒤집는다. 오셀로 게임이라는 것도 모두 다 허상. 삶의 의미를 빼앗겨 버린 사람들의 마지막 도착지.
모든 것이 허상임을 알면서도 또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향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 도코노 일족의 운명이라면, 그것도 희망이라 부를 수 있으려나.
밝게 시작했던 <민들레 공책>의 이야기는 진한 서글픔을 남기고 끝났다. 시작부터 무기질적이고 건조했던 <엔드 게임>은 '끝을 위한 게임'처럼 축축하기 그지 없었다. 저어기 멀리 다루마 산에서 함께 만날 도코노 족을 상상했던 건, 지나치게 낙관적인 장미빛 꿈일 뿐이었다고 비웃는 것 같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삶은 우리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비루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고, 정신차리라고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믿고 싶다. 그들의 다리 쭉 펴고 편안한 마음으로 서로 만나 작은 축제를 벌일 날이 올 거라고. 흐믓하게 서있는 두루미 선생 앞에서 미사키가 피리를 불면 모두 흥겨워 웃고마는 그런 축제 말이다.
그들의 약속대로 별과 새벽을 꿈꾸면서 살아갈 날이 올 거라고. 그렇게 도코노 일족은 계속될 거라고.
- 루, 당신을 만난 건 축복이야 - <어둠의 속도>
- Book
- 2007/09/02 15:26
- 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제목 : 어둠의 속도원제 : The speed of dark
지은이 : 엘리자베스 문 Elizabeth Moon
옮긴이 : 정소연
출판사 : 북스피어
출간일 : 2007년 4월
완벽한 개인의 세계에서 사회적 세계로의 확장을 강요받게 되는 사춘기 시절에는, 그 생소함이 너무나 가슴 아프고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하루는 난 이중인격자야 라고 자책하다가 다른 날은 난 아웃사이더구나 하고 서러워 하고 가끔은 난 외계인이 아닐까 체념하기도 했다. 가슴에 생채기를 내곤 했던 그 경험들이 어느새 묻혀버리고, 지금은 모두가 같다고 그래서 다른 사람은 이상하다고 치부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루 애런데일은 자폐인이다. 나는 자폐인이란 자기 안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병을 가진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만의 언어와 체계로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과 관계하고 있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이 설마 세상과 소통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루의 입으로 말해지는 이 이야기는 모든 게 새삼스러운 경험이었고, 또한 형언할 수 없는 미안함 그 자체였다. 물론 이 이야기는 근미래의 어느 시점, 자폐아들이 충분한 교육을 통해 기본적인 사회 생활을 부족함없이 영위할 수 있는 때의 이야기지만, 루가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사고를 처리하는 방식은 현재의 어느 시점이라고 해도 무방할 터이다. 오히려 자폐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결함에 대해 생각하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내가 루에게 가진 미안함의 정체는 비단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몰이해와 무관심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뼈아픈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어른으로서의 미안함이다. 당신이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얼마나 선물 같은 일인지 보여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다. 그래서 루가 교회에서 목사님과 대화하는 장면에선 온몸이 돌로 변한듯 굳어버렸다. 가슴에 눈물이 소리없이 차올라 공기의 흐름도 멈춰버렸다. 아마도 루의 변화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톰의 마음이 이랬을 것이다.
정상인들은 어떻게 느낄까? 중학교 과학 시간에 했던 실험을 기억한다. 비스듬히 놓은 화분에 씨를 심었다. 식물들은 줄기가 어느 쪽으로 굽어지든 간에, 빛이 있는 방향으로 자랐다. 누군가 나를 비스듬히 놓은 화분에 심었던 걸까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362)
빛을 향해 곧게 자라고 싶던 루는 이제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가 선택을 위해 고민했던 시간을 따라가면서 나는 오히려 내가 더 자폐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끊임없이 사람들을 패턴에 따라 분석하고 분류하는 생활, 내가 가진 방식과 다른 방식에는 그냥 귀를 닫아버리는 자포자기. 안으로만 파고드는 두더지같은 관계들. 나는 이러한 나의 방식에 만족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데, 그동안 루, 당신만 책망해서 너무 미안해.
긴 여행길에 함께 했던 책이었는데, 아드리아해의 망망한 바다 위에서 읽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잔잔한 물결이 가슴을 계속 때려서 간간히 멈춰서야 했다. 내가 루를 만난 것에 감사하며 책장을 덮었다. 그와의 만남이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는 것도 전해주고 싶다. 그가 끝에 이렇게 말했으니 모든 게 다 잘될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자, 나는 과거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이유는 알지 못한다. (550)
- 활짝 피어날 이야기들을 조용히 기다려야지 - <빛의 제국>
- Book
- 2007/06/12 00:04
- 빛의 제국, 온다 리쿠
제목 : 빛의 제국원제 : 光の帝國
지은이 : 온다 리쿠 恩田陸
옮긴이 : 권영주
출판사 : 국일미디어
출간일 : 2006년 12월
얘기하고 싶은 게 잔뜩인 얼굴이길래 밤 1시가 넘은 시간에 와인까지 꺼내들고 둘이 앉았는데, 내용은 차마 말할 수 없어 계속 혼자 횡설수설하더라. 결국은 얘길 참지 못하고 한 대목만 읽어주겠단다. 전후사정을 모르니 괜찮을 거라며, 정말 감동적이었다는 구절을 찾는다.
“그래, 미사키는 피리를 아주 잘 불었지.”
뭐야, 그게? 피리를 잘 부는 게 그렇게 감동적이야?
이 세계가 아닌 어딘가 먼 그곳으로 떠난 버린 눈빛을 하고는 남편은 계속 중얼댄다. 피리를 잘 불었대. 미사키는 피리를 잘 불었대.
결국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채로 내용만 빼고 에둘러 온다 리쿠 얘길 한참 했다. 난 <삼월은 붉은 구렁을>로부터 시작하는 긴긴 이야기의 세계에 대해 얘기하고, 신랑은 <빛의 제국>으로 얘기하고. 꼬맹이들이 하는 집단독백 같았다. 언뜻 보면 대화가 되는 듯 보여도 사실을 자기 얘기만을 늘어놓은 평행적인 대화. 나보다 책도 느리게 읽게, 나보다 소설을 덜 좋아하고, 나보다 감정표현도 짠 남편이 이렇게 신난 걸 보니, 절로 웃음이 난다. 온다 리쿠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나보고 이 책 읽고 리뷰 쓸 땐 별 여섯 개 주란다.
긴 시간을 뜸을 들여 이제 나도 빛의 제국, 도코노를 만났다. 도코노 일족을 만나는 일은 생경한 경험이었다. 끊어지는 듯 이어지는 이야기, 이어지는 듯 끊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건 멀미가 나는 일이었다. 이게 과연 하나의 이야기인걸까, 아키코는 누구일까, 에이코의 남편은 어디로 간 걸까, 신타로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나는 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다 펼쳐놓아 버린 온다 리쿠의 의중을 잘 모르겠다. 글을 쓰기 전에 세밀한 도면을 먼저 그리는 작가가 아니라는 걸 미리 알지 못했다면 조금은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의도가 도코노의 넓고 깊은 세계를 가슴으로 느끼게 하려는 것이었다면, 그래, 그것은 상당히 성공했다. 그녀에게 모든 이야기는 어떤 원형, 어떤 근원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 불린다는 것을 잊지 말 일이다.
빛의 제국, 도코노를 잠시 엿보았던 것이 내속의 어느 근원을 슬쩍 흔들고 간 것이라 해도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말 그대로 나는 엿본 것일 뿐이니까. 언젠가 활짝 피어날 이 이야기들을 조용히 기다려야지. 그들의 기도대로 열매를 따서 먹고, 별과 새벽을 꿈꾸면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지. 다루마 산 넘어 나지막한 학교 운동장을 지키고 있는 두루미 선생을 만날 때까지.
- 디킨스의 꿈, 다이안 세터필드의 꿈
- Book
- 2007/05/21 08:34
- 다이안 세터필드, 열세 번째 이야기
from Robert William Buss's painting, Dickens's Dream (1875).
(출처 : http://www.dickensmuseum.com )
이건, 비다 윈터 여사의 꿈, 혹은 다이안 세터필드의 꿈서재에 앉아 있는 디킨스의 사진을 본 적이 있나? 버스라는 사람의 작품인 걸로 기억하는데, 어딘가 그 복제품이 있을 거야. 내가 나중에 찾아서 보여주지. 어쨌건, 그 사진 속에서 디킨스는 책장에서 멀찌감치 밀려난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졸고 있다네. 까칠한 턱을 가슴에 묻고 말이야. 슬리퍼를 신고 있었어. 그의 머리 주변에는 그의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마치 담배 연기처럼 공중을 떠다니고 있지. 그 중 몇 명은 책상 위에, 몇 명은 그의 뒤쪽 책상 앞에 있어. 또 몇 명은 마치 금방이라도 걸을 것처럼 바닥에 서 있다네. 사실 안 될 것도 없지. 그들은 작가 자신의 모습처럼 선명했다네. 어쩌면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속에 그려진 그림들, 배경조차 없는 백지에 최소한의 선으로 그려진 삽화보다는 그 사진이 훨씬 더 사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새삼스럽게 왜 사진 얘기를 꺼내는지 궁금하겠지. 그 사진을 이렇게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 사진이 내가 살아온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라네. (161)
다이안 세터필드, <열세 번째 이야기> 中
- 문장들 사이를 유영하며 - <다다를 수 없는 나라>
- Book
- 2007/04/29 19:43
-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안남, 크리스토프 바타유
제목 : 다다를 수 없는 나라원제 : Annam
지은이 : 크리스토프 바타유 Christophe Bataille
옮긴이 : 김화영
출판사 : 문학동네
출간일 : 2006년 9월 (초판은 1997년 1월)
발리에서였나.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작은 바닷가 아멧에서의 일이다. 바닷가를 향해 가파르게 경사진 오두막 숙소에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수영장이 있었다. 경사진 탓에 수영장 끝이 바다와 맞닿아 있는. 보름달이 뜬 밤이면 수영장에 둥둥 떠서 바다 멀리 떠 있는 달빛을 넋 놓고 바라만 봐도 좋은,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수영을 하지 못했던 나는 달빛을 받으며 유영을 하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바로 옆 작은 식당 마루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채식주의자인 백인 여자들이 소곤거리며 달빛에 취해 있었고, 나와 내 짝꿍도 말없이 달빛을 받고 있었다. 머릿속을 떠다니던 노래들이 음표가 되어 날아다니던 밤이었다. 그 밤, 나도 수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 달빛을 받으며 유유히 떠다니고 싶다고.
게으른 나는 아직도 수영을 못하지만, 달빛을 받으며 유영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간혹 몸으로 느끼곤 한다. 요며칠 나는 계속 떠다녔다. 달빛이 나리는 싱그런 초목 울창한 숲에서 멀리 생명의 숨소리를 느끼며 조용히 물을 떠다녔다. 크리스토프 바타유의 문장들은 깊고 조용한 물 같았다. 단문들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속도감에 떠밀리기보다는 유유히 흘러갔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안남은 그런 곳이었다. 비오던 밤, 멀리 철썩이는 바닷소리를 들으며, 나뭇잎새로 만든 지붕위로 후두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작은 도마뱀이 눈을 빛내고 도망을 치던 베트남 무이네의 바다처럼 말이다.
내리 두 번을 읽고 세 번을 읽으며 마음껏 헤엄을 치고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김화영 교수의 후기를 보았는데,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망망대해와 건너지를 수 없는 침묵의 공간이 깊고 넓어진다’(154) 는 설명이 있어 다시 한번 놀랐다.
바타유의 글이 흐르고 있는 곳들 깊숙이에는 종교에 대한 물음이 있다. 끊어지지 않는 근원적인 물음에 호기롭게 직진하는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나에게 종교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 끊임없이 도망쳐 다녔던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적인 행위와 발현들을 속이 빈 허위의식이라 생각하면서도 종교 그 자체는 도무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과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온갖 신앙들을 볼 때마다 역겨워하면서도 그 존재의 자연스러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개하고 축복받지 못한 베트남을 개명시키기 위해 떠났던 선교사들이 항구를 떠난 그 순간부터 그들은 자신을 버려야 했다. 배를 버리고 성직자의 예복을 버리며 깊은 숲으로 들어가 베트남인들과 함께 땅을 갈고 살았다. 기도를 가르치고 복음서를 가르쳐도 무언가 변하는 것은 없어 보였다. 끝내 카트린 수녀는 물었다.
“도미니크, 우리는 진정으로 바딘의 농사꾼들을 개종시킨 것일까요?”오히려 변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었다. 도미니크와 카트린.
“나도 오랫동안 그 생각을 해봤어요, 카트린. 그들은 우리가 들에서 하는 일과 당신의 미소 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들이 과연 하느님만을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102)
‘두 사람은 단순하고 자유로운 삶의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 그들의 영혼은 헐벗었다. 그들에게는 오직 군더더기 없는 핵심만이 남았다.’(124)
그리하여 결국 ‘오직 시편들과 기쁨만’이 남았다.(126)
우기가 시작되고 지붕의 흙더미가 비를 타고 툭툭 떨어지는 어두운 날들이 계속되자, 그들은 그것이 종교임을 깨달았다. 세계에 대한 순수한 기쁨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서로를 향한 열정. 그것이 곧 종교 아닌가.
하하. 눈물이 난다. 그것이 곧 종교 아닌가.
- 아무도 어른이 되지 않는다 - <소라닌>
- Book
- 2007/02/11 21:52
- 소라닌, 아사노 이니오
원제 : ソラニン
지은이 : 아사노 이니오 ?野いにお
옮긴이 : 유미선
출판사 : 북박스
출간일 : 2006년 12월
메이코는 스스로를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평범한 24살의 그녀가. 자신이 가야할 길을 정확히 알고 그 길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어른이라고 한다면,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과 어른을 구분한다. 자고로 어른들이란 ‘아무렴 어떠냐’의 덩어리다(13) 라거나 젠장, 어른들은 더러워(101)하면서. 그건 다네다도 그리 다르지 않다. 앞길이 불투명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무엇이 옳은지 말할 수 없는 나날들. 그 속에서 언젠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희뿌옇게 떠다닐 뿐이다.
나는 나를 어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른이라는 자각을 할 때는 명절 때 정도. 부모님 용돈 챙기고 동생들 용돈 챙기고, 우리집이며 시댁이며 여기저기 인사 다니고 할 때에는 아~ 어른노릇은 어려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니까.
스무살 파릇파릇한 젊은이도 아니고 나름 안정적인 직업도 가진 삼십대의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건 우스운 일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메이코의 말이, 다네다의 말이 모두 내 얘기 같았다고 생각한다면 더욱 우스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만히 둘러보면 어른이 아니고 싶어하는 사람들 참 많다. 어느 정도의 피터팬 콤플렉스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나는 사회생활과는 맞지 않는 인간이야(16) 하면서 모두들 살아간다. 아, 물론 혀를 내두를만큼 사회생활에 적응 잘하고 똑똑하게 이재를 잘 살피며 사는 사람 있는 건 사실이다. 재테크니 펀드니 하면서 알 수 없는 미지의 것들을 줄줄 꿰고 있는 사람들도, 그런 얘기하면서 눈빛이 반짝반짝 거리는 걸 보면 ‘아이같다’ 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도 서른이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에 다닐 땐 스무살이 되면 그럴 줄 알았다. 몸 어딘가에 어른이 되는 스위치가 붙어있기라도(2권,15) 할 줄 알았다. 인생의 골목길에 가로등이 짠~하고 밝혀져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환하게 알 수 있게 되고, 자신감있게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말할 수 있게 되는지 알았다. 스무살이 한참 지나고도 그럴 기미가 조금도 없길래 서른이 되면 그런가보다 했다. 결혼도 했고 사회인도 되었으니 빼도박도 못하고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불확실하고 여전히 자신없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단지 확실한 척하고 자신있는 척하고 모든 걸 아는 척해야 하는 순간이 점점 많아진다는 거, 그런 걸 내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거, 그 뿐.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며 살아가다보니, 요즘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조금씩 옅어지고 있어 기쁘다. 어른은 이렇고 이렇고 이런 거야 하는 생각이 사라지고 나니, 조금은 덜 불안하다.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지만 설레는 순간들을 조금씩 만들어가며 그렇게 나이들고 있다.
메이코도 그럴 게다. 그녀는 또다시 도쿄의 평범한 OL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새 ‘난 사회생활과 맞지 않는 인간이야’를 다시 외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녀는 설레는 순간들이 어떻게 찾아오는지 알았으니, 반짝이는 눈빛들이 어떤 빛인지 알았으니, 더 이상 어른이 되려고 발버둥치며 살지는 않겠지.
덧붙임) 놀랍도록 디테일을 잘 잡아내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80년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세심하고 사려깊은 시선. 게다가 남자 작가.
디테일 하면 <사랑의 카운슬러>의 강유미 만한 사람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호~ 강유미 이상이다.
(그림 출처 : 쇼가구칸小?館 영선데이 http://www.youngsunday.com/ )
- 언젠가 분명 보았던 그곳, 삼월의 나라 -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 Book
- 2007/01/31 17:48
-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온다
제목 :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원제 : 麥の海に沈む果實
지은이 : 온다 리쿠 恩田陸
옮긴이 : 권남희
출판사 : 북폴리오
출간일 : 2006년 12월
(스포일러가 곳곳에..)
이 책을 읽기 전에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4장을 다시 읽었다. 다시 읽는데도 한 문장 한 문장이 새록새록하여 열심히 곱씹으며 보다가 하루가 다 가버렸다. 밤늦게 집어든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은 열매> 서장을 읽다가 어질어질하여 그만 잠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 다음날에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셈인데, 리세가 기차에서 눈을 뜬 순간부터 몽롱해지는 느낌이었다. 같은 장소, 같은 인물, 같은 감상, 같은 대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과연 예전에 읽었던 부분인지조차 헷갈려지기 시작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서 봤던 똑같은 대사다, 라고 생각했다가 순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뒤따른다. 과연 내가 봤던 건 뭐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나 넘쳐나는 기시감. 어디서 봤더라,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 나왔던 걸까, 서장에 나왔던 걸까, 아니면 읽다가 잠들었을 때 꾸었던 꿈에서...?
그것은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나온 조금씩 다른 같은 이야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녀의 잃어버린 기억 때문일 수도 있고, 교장이 나에게 먹인 검은 홍차 때문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음습하게 뭉뚱그려진 채로 미로를 헤매는 듯한 느낌으로 내내 책을 읽게 되었다. 미스터리 소설의 독자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명확한 상황 판단력이나 논리적인 추리력 따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도개교를 지나 삼월의 학원제국에 들어가는 순간, 무언가에 취해 버렸다. 조금은 다른 결말을 가진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4장 이야기처럼 이 학원 지하에 아편의 재료인 양귀비를 키우는 정원이 넓게 있어서 조금씩 조금씩 중독이 되고 있었던 걸지도. 아니, 부모와 친지로부터 버려진 채 세상과 단절된 채 묘지같은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아이들의 우울한 감정들이 공기를 통해 조금씩 나를 감염시키고 있었던 걸지도.
그래서 느닷없던 결말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멍청~하게 책을 읽고 있던 내 두 뺨을 찰싹 내리쳤다. 교장이 리세에게 그랬던 것처럼. 정신을 차리고 났을 땐 모든 정리가 끝나버린 후였다. 레이코도 레이지도, 요한도, 유리도. 모든 상황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정신없이 쫓겨 다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리세는 야무진 표정으로 새침을 떨고 있다.
결국 고등학생이 되어 떠나가는 리세를 뒤로 한 삼월의 제국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누구에겐 요람이고 누구에겐 양성소이고 누구에겐 묘지인 이곳. 누군가에게 검은 홍차를 먹이고, 누군가를 첨탑에서 떨어뜨려 죽이는 이곳. 밀실인 장미정원에서 누군가 사라지는 이곳. 그러나 아름다운 곳.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4장을 보면 온다 리쿠가 글을 쓰는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글이 있다.
그녀가 소설을 쓰는 방법은 엉성하기 짝이 없다. ‘분위기는 이러이러하고, 읽히면 이러이러한 기분이 되는 것은 쓰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맨 앞에 있고, 그 다음으로 ‘이러이러한 장면을 쓰고 싶다’는 식으로, 쓰고 싶은 장면들이 몇 가지 있다. 그래서 그런 장면들을 이어붙이는 것이 작업의 핵심이다. 흩어져 있는 장면들에서 전체 이미지를 발굴해 가는 작업은 즐거우면서도 고생스러운 일이다.
이 말은 소설 속의 한 장면이지만,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에 한해서는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원제 : 光の帝? 常野物語
지은이 : 온다 리쿠 恩田陸
옮긴이 : 권영주
출판사 : 국일미디어 - 도코노 이야기 첫번째
출간일 : 2006년 12월
온다 리쿠의 연작소설이라고 했을때, 이런 것이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도코노 이야기'라는 부제에도 어떤 반응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이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책을 덮은 지금 '도코노'사람들을 알지못했다면 얼마나 불행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빛의 제국'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단지 환상적인 공간에 만들어진 상상의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딛고 있는 그 대지에서 퍼져나오는 따스함은 이 현실공간을 덥혀주고도 남을 만큼 강하다. 이런 점 때문에 온다 리쿠가 만들어낸 세상은 환상적이면서도, 그만큼 현실처럼 느껴진다.
온다 리쿠도 좋아한다고 했지만, '연작'이라는 이야기 구조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각각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고 전혀 다른 이야기들로 구성되지만, 이야기들 사이에 묘한 연결고리를 갖는 구조. 그 연결고리는 '도코노'이다.
첫번째 이야기 '커다란 서랍'을 읽었을때 '하루타일가'의 이야기가 연작의 축인줄 알았다. 작가도 그것으로도 충분했으리라고 얘기했듯이, 정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찻종'이 전혀 다른 사람들의 전혀 다른 이야기로 진행되면서 천천히 긴장되기 시작했다. '이거 장난아닌데'하는 그런 느낌. 역시 온다 리쿠라고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오셀로게임'에서는 에이코의 이야기에 한없이 안타까워하고, '검은탑'에선 아키코가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까 궁금해진다. '편지'에서 드러나는 도코노의 비밀들과 '빛의 제국'에서 도코노 사람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사건들, 이야기마다 '도코노'의 세계가 조금씩 드러나지만,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작가의 몫이 아니라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그리고 먼길을 돌아 이윽고 마지막 이야기 '국도를 벗어나'에 이르면, '미사키'와 자그마한 '노인'이 만나는 장면에 이르면, 그리고 그 노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그래, 미사키는 피리를 아주 잘 불었지.'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면, 모든 것을 납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 미사키는 피리를 잘 불었었지.'라고. 그리고 안도하게 된다. 지금이라도 '도코노일족'을 알게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 이윽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꽃이 열매를 맺는 것처럼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풀에 볼을 비비고, 바람에 머리칼을 나부끼며, 열매를 따서 먹고, 별과 새벽을 꿈꾸면서 이 세상에서 살자. 그리고 언젠가 이 눈부신 빛이 태어난 곳으로 다 함께 손을 잡고 돌아가자.책을 읽는 동안 내내 소품같은 이야기에 숨겨진 넓디넓은 '도코노'의 세계에 감탄하였다. 내내 그들의 삶을 사랑하고, 그들을 상상하였다. 그리고 그 여백에는 '도코노일족'의 '도코노'이야기가 자리잡고, '온다 리쿠'의 세계가 자리잡고, 나의 '도코노'가 채워졌다. 내내 행복했다. 그래, 내내 행복했다.
- '다케시'의 기도중에서
- 꼬마 알도로부터 배우다 - <알도와 떠도는 사원>
- Book
- 2007/01/28 23:42
- 김성규, 김용규, 알도와 떠도는 사원
제목 : 알도와 떠도는 사원지은이 : 김용규, 김성규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출간일 : 2006년 12월 (재출간, 초판은 2001년 출간)
SF나 판타지 작가들만큼 욕심이 많은 사람들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온전히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내고, 그 세계의 세계관과 구조를 재단한다. 무수한 인간 군상들의 삶을 세심하게 조각하며 때로는 신까지도 창조한다. 삶과 죽음에 대하여,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자아와 타아에 대하여, 우연과 필연에 대하여, 있음과 없음에 대하여 광활하게 내달린다. 그러니 이런 장르들이 철학과 어울리지 않기도 어려울 것이다. 철학판타지 라는 단어만큼 제 짝을 잘 찾은 단어도 없겠단 말이다.
그러나 철학은 언제나 우리 삶 곁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불을 밝히고 선 동반자와 같은 것이어서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더구나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게 만드는 것은 삶에서 철학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므로 더욱 어려운 일이다. 다른 장르들에 비해 SF나 판타지 소설에서 치기어린 글들이 많이 보이는 것도 다 이런 연유이다.
<알도와 떠도는 사원>이 철학판타지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재출간되었다는 것은 철학을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여타의 치기어린 글들에 비해 정제되고 준비된 책이라는 의미도 들어있을 것이다.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다.
꼼꼼한 만듦새에 흡족해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마지막장까지 덮은 지금, 그 자신감의 표현이 합당한 것이었다고 인정.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장르적 원칙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어 크게 놀라거나 크게 실망할 만한 일은 없다. 이야기적 재미가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책장을 한 장더 넘기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는 건, 오히려 사건들이 아니라 사건들을 대하는 알도의 태도이다. 사건과 사람과 자연을 대할 때마다 알도가 떠올리는 것들, 알도의 여자친구 레나가 떠올리는 것들이 궁금해서 책을 계속 읽는다. 때로는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이 뒤따르기도 한다. 그러나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고, 버린 것보다 배운 것이 더 많았다는 걸 생각하면, 때론 지루했던 설명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 학문적 개념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 보다도 진지하게 사람과 자연과 세계를 대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꼬마 알도로부터 배웠다.
2001년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지금과 같은 감흥이나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땐 아는 게 정말로 없어서, 무식해서 용감했기 때문에 이 책 보면서 코웃음을 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앎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많아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그 당연한 걸 이제야 알았으니, 난 아직도 갈 길이 까마득하다.
- 잠 못들 오싹한(그러나 즐거울) 밤을 위하여 - <웃음의 나라>
- Book
- 2007/01/18 22:24
- 웃음의 나라, 조너선 캐럴
제목 : 웃음의 나라원제 : The Land of Laughs
지은이 : 조너선 캐럴 Jonathan Carroll
옮긴이 : 최내현
출판사 : 북스피어
출간일 : 2006년 12월
(심각한 스포일러가 곳곳에 포진되어 있음)
세상에나, 어이쿠, 조너선 캐럴 선생, 이건 반칙이지 않수?
꿈많은 청년 작가의 익살스런 모험기 또는 매력적인 두 여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남자의 러브스토리, 내지는 이야기 속 세계와 그 작가를 동경하는 독자들의 로망, 정도를 예상했고 또 그렇게 읽혀온 이야기의 뒤에 이런 음모와 계략을 숨겨 놓다니, 너무해.
차라리 웃기지를 말지. 그 놈의 개새끼가 말만 안했더라도, 상상도 안되는 쥐어짜는 목소리로 그 놈의 개새끼가 잠꼬대만 하지 않았더라도,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유쾌해하며 멋대로 꿈과 환상의 나라를 꿈꾸지는 않았을 거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에 온 것 마냥 순진한 척 귀여운 척 꿈꾸지는 않았을 거란 그런 얘기다. 애초에 뭔가 좀 꺼림칙하긴 했다만...
그래도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이야기 속의 인물들을 현실에서 만날 수 있다니! 쓰면 쓰는대로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니! 쉬이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그저 어릴적 종이인형 오리기 하는 것 정도로만 가볍게 봤던 내가 잘못한 거다. 그래, 다 내 잘못이다.
책을 읽을 때 심각하게 감정이입을 잘하는 나는 작가의 얼굴을 눈으로 확인하길 좋아한다. 아,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눈으로 직접 봐야 안심이 된다. 그.런.데. 이 망할 작가, 조너선 캐럴은 도저히 찾아보질 못하겠다. 작가 스스로도 사진 공개를 좋아하질 않았거니와, 직접 보면 그 사람 눈에서 마법의 광선이라도 나와서 꽁꽁 얼어버릴 것만 같다. 무슨 메두사도 아니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실소가 나오지만, 왠지 오싹해진다.
어제는 이 책을 읽느라 새벽 4시에야 잠자리에 들었는데, 도무지 잠이 오질 않는 것이었다. 도망간 토머스를 어쩔 것인가를 두고 게일런 마을 사람들이 매일밤 모여 모의했을 걸 생각하니, 오지도 않던 잠마저 다 달아나더라.
"역시 그때 그놈을 처리했어야 하는데..."
"피터 멕시코(이름이 이게 뭐냐??)처럼 지하철에서 확 밀어버렸어야 했어.."
이런 대화들이 오갔을텐데 으아.. 잠이 올 턱이 있나.
작가란 언제나 그런 사람들일 거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의 실존을 가슴 깊숙한 곳에서 믿고 있는. 독자들도 때론 그렇게 믿고 싶을 정도인데, 작가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 그러나 그것이 꿈에서 현실로 변하는 순간,
두둥. 또 하나의 게일런이 탄생하는 거다. 우~와, 무섭다. ㅋㅋ
사족)
책 뒷표지에 보면 닐 게이먼이 쓴 소개 문구가 있다.
힘들고 지칠 때야말로 좋아하는 책이 최고의 위안처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소설
하, 닐 게이먼 그 양반 책을 떠올린다면,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그 말 뒤에 숨은 의미를. 그 말 뒤에서 닐 게이먼이 흘린 음흉하고 개구진 웃음을.
- '스릴러는 사랑이다'라는 명제의 증명 - <남편>
- Book
- 2006/12/29 13:35
- 남편, 딘 쿤츠
제목 : 남편원제 : The Husband
지은이 : 딘 쿤츠 Dean Koontz
옮긴이 : 최필원
출판사 : 비채 - 모중석 스릴러 클럽 06
출간일 : 2006년 11월
표지 앞에 턱하고 박혀있는 '스릴러는 사랑이다'라는 문구를 처음 봤을 때, 살짝 웃었다. 참 애썼네, 싶었다. 그런데 책을 중간쯤 읽다가 이제 그만 씻고 잠자리에 들려는 찰나,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 결국 오던 잠은 어디론가 쫒겨가 버리고,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스릴러의 생명은 절박함과 속도감이다. 책장을 닫는 그 순간까지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기분으로 계속 내달리게 해야 한다. 그것도 바로 뒤꽁무니에 불길이라고 덮칠쎄라 정신없이.
대부분 쫓기는 사람이 주인공인 스릴러에서 그들이 허겁지겁 도망을 다니는 경우는 잡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그만두면 모두 끝장난다는 절망감이 그 동력이 되며, 그런 동력의 원천은 역시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 즉 '사랑하는 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주인공이 쫓는 사람이 된다고 해도 그리 달라지지 않는데, 그 이유가 '정의', '인권' 등과 같은 것이라며 목숨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쫓는 게 쉬이 공감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아내를 지키기 위해, 내 아이를 구하기 위해 쫓긴다, 혹은 쫓는다, 이 얼마나 설득력있는 구조란 말인가. 그러므로 딘 쿤츠의 <남편>에서 남편이 아내를 구하기 위해 온갖 사지로 내몰리며 쫓겨다니고, 또한 쫓게 된다는 설정은 스릴러의 가장 전형적이며 또한 근원적인 명제를 증명하는 것이다.
밋치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건실하게 생활하고 있는 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총을 쏜다거나 누군가를 포박하고 고문한다거나 더 나아가 죽이는 건, 해본 적도 없고 해야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 그가 납치된 아내를 구하기 위해 위에 나열한 그런 일들을 해야만 했고, 갖은 고생끝에 아내를 구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바로 <남편>이다. 정말 그게 전부다. 아내를 구하기 위해 남편이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이 정도면 '스릴러는 사랑이다'라는 카피를 딘 쿤츠가 직접 썼다고 해도 믿겠다. 반전이라거나 속임수같은 건 필요없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 명제를 증명하겠다, 는 각오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시도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명제의 증명은 명쾌한 대신에 소소한 아쉬움들을 남긴다. 우선 가장 큰 아쉬움은 너무 단순하다는 것. 이야기의 중심이 평범하고 소심했던 남편 밋치만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건의 디테일이 좀더 풍부해질 가능성들이 모두 사라졌다. 가장 아쉬웠던 것이 태거트 형사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적으로든 동료로든 좀더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면 이야기가 좀더 다이나믹해질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그러려면 제목이 <남편과 형사> 가 되었으려나.
납치범들의 이야기 역시 지나치게 단순하게 처리되었다. 초반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집요하고 치밀하게 보였던 그들이 중반 이후 스르륵 정리되더니 결국은 한 정신착란증 환자의 소행으로 귀착되어 버리는 듯한 모습은 역시, 소설의 중심을 모두 '남편'에게만 맞추려다 보니 그리 된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아내에 대한 사랑, 아내를 구하려는 열망 역시 단순하게 그려졌다는 느낌이다. 뛰어난 사건의 묘사를 감정의 묘사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선 맹목적이 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달 수도 있지만, 당연한 논리인 만큼 좀더 세심하게 묘사되었다면 더 공감할 수 있었을 게다.
그러나, 이상의 아쉬움 부분과는 별개로, '스릴러는 사랑이다'라는 명제는 이 책에서 단순하고 명쾌하게 증명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그래서 이런 식일 수밖에 없다. 뛰어노는 아이들과 사랑스런 아내를 안고 춤추는 모습.
사족)
다 읽고 나서, 내가 이렇게 납치되었다면 우리 남편은 어떻게 하려나 생각해 봤다. 밋치처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 신랑은 그냥 경찰에 신고해버렸음 좋겠다. 밋치처럼 나를 구하려 온다고 해도 별로 기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아마 이랬겠지.
"죽으려고 환장했어? 바보야!! 뭐하러 여기까지 와? 경찰은 폼으로 있는 줄 알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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