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자유부인 개봉!

1954년 '자유부인'논쟁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논쟁은 1954년 3월에 시작되었습니다. '자유부인'을 비난하며 논쟁을 일으킨 사람은 서울 법대의 황산덕 교수였습니다. 그는 이 소설의 내용을 들어 '대학교수를 양공주에 굴복시키고 대학교수 부인을 대학생의 희생물로 삼았다"며 이 소설은 '중공군 50만명'에 맞먹는 '조국의 적'이라고 주장했답니다.

소설 '자유부인'은 대중소설로 당시 세태를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 당시의 댄스붐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고, 대학생과의 불륜관계가 나오기도 한다는 군요. 당시 이런 점 때문에 이 소설은 희대의 화제가 되었고, 논쟁까지 벌어졌던 겁니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에 의하면 이 소설은 황산덕 교수가 비난하듯이 불륜을 조장하는 소설이라거나 비윤리적인 소설로만 보기엔 적당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보다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등 권력자들에 대한 묘사에서 신랄한 독설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이지요. 그는 이 소설이 당대 사회를 충실히 반영한 작품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여하튼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어쩌면 여러분들 가운데 그 영화 화면의 일부를 몇몇 다큐멘터리에서 보신 분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위 사진은 1957년 초, 영화의 속편 포스터입니다. 당시 영화계에서 속편까지 만들어진다는 것은 이 소설과 논쟁이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증거일 겁니다. 그리고 사진속의 여배우는 여러 제약 광고 모델로 활약하기까지 했죠.

* 당시 신문 광고에서 영화광고의 수는 상당량을 차지 합니다. 즉 영화광고주는 신문광고시장의 주요한 물주들이었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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