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12월 4일 군복 착용 단속

군복 여부는 도외시, 빛깔만 보고 덮어놓고 '염색 표식', 당국도 가부 양론으로 대립

"치안국과 서울시 경찰국은 군복 불법착용자에 대해 전경찰이 동원되어 단속한 결과 '1일 하루 사이에 23,940 건을 검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라고 3일 발표하였다. 그리고 계속하여 '단속한 건 중에서 1,399건을 치안재판에 회부하였으며 770 건은 압수하고 23,904 건은 취재하는 그 자리에서 염색시켰다'고 발표하였는데 그 중 수위는 서울의 13,575 건이라는 것이다. 한편 김치안국장은 1일부터 군복 착용자를 강력히 단속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는데 그가 언명한 바 단속기일인 1일 하루 앞서는 30일에도 도합 5,585 건의 불법착용자를 단속하였다는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번 단속은 군복 단속뿐 아니라 '국방색 단속'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으며 누른색 옷을 입은 사람은 모조리 검거하여 트럭에 실어 국방색 검거 선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1956년 12월 4일자]

1956년 12월초 경찰은 군복의 불법적인 착용에 대한 전국적인 단속을 시행합니다. 관련 기사를 더 읽어보면 서울시경찰국과 치안국의 단속 기준에 대한 견해가 달랐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울시경찰국은 군복과 변조한 군복의 착용에 대해서만 단속을 하고자 하였고, 치안국은 군복 착용외에 국방색 의복의 착용에 대해서도 원천적인 착용 금지 입장이었습니다. 다음날 후속기사를 보면 치안국의 입장이 전국에 관철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치안국에서는 '국방색 옷이면 무조건 군복으로 인정하여 옷 위에 염색이라고 써서 창피를 주고 내보내라'는 지시를 일선 경찰서에 내려보냈다고 합니다. 내무부 장관이나 차관도 이런 무차별적 단속에 반대했다고 하는데 계속 치안국의 의견이 관철되는걸 보면 당시 지휘체계도 상당한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이 단속으로 시민들은 엄청난 불편을 겪게 되었고, 불만도 상당히 높아졌죠.

왜 군복 착용을 단속했나?
이승만정권 시기에는 군인이나 경찰, 공무원 등 권력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가진 자들이 자의적으로 자신의 특권을 표현하는 시대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심지어 버스를 탈 때도 무임승차를 밥먹듯이 했다고 합니다. 특히 군인은 한국전쟁이후 사회적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대개 우리 부모님 세대는 한국전쟁후 상의군인들에 대한 공포의 기억들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요, 상의군인들은 이런 자의적인 특권 행사에서 극단적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1956년말 군복 착용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도 군인이 아닌 사람들이 군복을 입고 자의적인 특권을 빈번히 행사하여 자주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차별적 단속의 의미
군복 착용에 대한 전국적이고 무차별적인 단속은 일반시민들에게 단순히 불편을 자아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치안당국의 대규모적인 검속은 기본적인 국민의 권리를 억압하고 일반 대중을 피의자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이승만정부는 이것을 통해 국민의 일상생활까지를 통제함으로써 피동적이고 순종적인 국민을 만들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이러한 무차별적 단속은 아마도 치안국장 김종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입니다. 김종원은 거창사건에서 양민을 학살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3년형이라는 가벼운 형을 받았고, 이것마저 이승만의 특사로 1년만에 석방되는 특권(?)을 누린 자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치안국장이라는 높은 직함까지 얻었죠. 이렇듯 이승만의 총애로부터 나온 권력은 그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나누어 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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