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익숙함, 크로아티아 - 자그렙
- Travel/2007 크로아티아
- 2007/09/28 15:36
- 자그렙, 크로아티아, 유럽>크로아티아>자그렙
아, 드디어 마지막 도시 자그렙에 도착했다. 마치 내 나라인 것처럼 국내선을 타고 또 버스를 타고 이 도시로 들어왔다. 처음 도착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서일까. 자그렙이 푸근하다.
눈에 익은 길을 따라 호텔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예약을 하고 왔던, 이번 여행에선 유일한 호텔이다. 시가지 중심에 있는 호텔들은 이미 풀북이라 구할 수 없어 약간 벗어난 곳에 묵게 되었는데, 시가지로 나가고 보니 무지 가깝다. 룸도 엄청 넓고 깨끗한 게 마음에 들었다.
오후를 보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호텔 바로 앞에 트램 정류장이 있는데, 도무지 트램을 어떻게 타는지 모르겠다. 론리 플래닛에는 표를 사라고 되어 있어서 매점에서 표를 사긴 했는데, 트램에는 표를 넣는 곳도 없고 검사하는 사람도 없고 하다못해 어디 가져다 대는 곳도 없다. 아무도 표를 제시하지 않은 채 타고 내린다. 무임승차하는 몰지각한 한국인되고 싶지 않아서 표를 손에 꼭 쥐고, 누가 검사라도 하면 자랑스럽게 내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정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다음날까지 오며가며 트램을 여러번 탔는데 표는 아무 필요가 없었다. 공짜인가? 그럼 표를 왜 파는 거야? 도무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도 미스터리.
여행을 떠나기 전 자그렙에 대해 들은 이야기들은 대부분 크게 볼 거 없는 도시, 특별한 특색이나 매력은 없는 그저 수도,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도 자그렙에서의 시간을 그리 많이 정해두지 않았는데, 첫 유럽 여행이라는 우리의 특수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어딜 가든 좋지 않으랴, 이걸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들렀던 곳들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올드시티였던 데에 반해, 이곳은 도시. 역사적인 건물들이 많다는 점은 같아도 여긴 16세기 이래 수도로서 기능해 온 만큼 위용이 대단하다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시내 중심가에 내린 순간, 아뿔싸 실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그렙에서의 시간도 넉넉하게 잡아둘 걸. 한 나라의 수도인데 작은 시골마을 정도의 규모라고 생각하다니.. 우리에겐 남겨진 시간은 오늘 오후와 내일 오전. 채 하루가 안되는 시간. 아, 아쉬울 뿐이다.
바쁜 마음을 다잡고 언덕을 올랐다. 언덕 위에 있는 성 스테판 성당은 자그렙의 상징과도 같은 곳인데, 도착해 보니 한쪽 첨탑이 보수공사 중이다. 1242년 착공하여 무려 123년간 지어졌다고 하는데 이 아찔할 만한 높이의 첨탑을 만드려면 100년도 모자랐을 것 같다. 시간이 늦어 안에는 들어가 보질 못하고, 성당 앞에 있는 황금색의 성모 마리아 상을 한참 바라보다 내려왔다.
해가 차츰 기울자 올드타운의 골목들은 여기저기 차를 마시거나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찬다. 거리 한복판까지 색색의 테이블이 놓여지고 큰 TV로 축구를 보며 술을 마신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나왔나 몰라.
다음날 아침 다시 이 골목들로 나왔는데, 어젯밤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간데 없이 정돈되어 있어 어리둥절했다. 조용히 깨어나고 있는 골목을 산책삼아 돌아 다녔다. 유명하다는 건물들은 여기저기 공사중이라 별 감흥이 없었고, 오히려 깔끔하게 채색된 골목길이 훨씬 기분 좋았다.
아기자기한 간판들, 세월이 느껴지는 큰 창문, 장사 준비를 시작하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미니어쳐 샵을 발견하곤 눈이 동그래졌다. 미니어쳐라면 사족을 못쓰는 우릴 알아봤는지 주인 아저씨가 들어와서 보란다. 중세의 병사들부터 근현대의 군인들, 시골 아낙에서 아이들까지, 엄지손가락 하나 크기만도 안되는 이 인형들은 다 아저씨가 만들었단다. 자물쇠로 꽁꽁 넣어둔 인형을 다 꺼내서 보여 주신다. 탐나긴 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그냥 나오려는데, 문옆에 삼총사가 모여 서있는 미니어쳐를 보곤 머리가 확달아올라 버렸다. 무지무지한 가격을 주고 그걸 사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씌웠지 싶다.
골목을 슬렁슬렁 걸어 미마라 박물관에 도착했다. 자그렙에는 국립 고고학 박물관, 근대 미술관, 역사 박물관 등 많은 박물관이 있는데, 그중 가장 규모가 크고 많은 작품을 소장한 곳이 바로 이곳, 미마라 박물관이다. 10시 개관시간에 맞춰 처음으로 박물관에 들어갔다. 오후엔 공항으로 떠날 계획이라 마음이 바쁘다. 웅장하고 한산한 이 박물관은 1층에 유리, 타일, 중국 및 아시아 유물을 전시하고 있고, 2층이 조각, 3층이 회화 전시관이다. 젤 윗층 회화관을 먼저 들어갔는데, 높은 천장에 띄엄띄엄 배치된 그림들을 만난 순간 카리스마가 가득한 존재감에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거의 없는 넓은 공간에서 아침빛을 받으며 그림을 마주하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마치 물속에 들어온 듯 귀가 울린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라 간간히 카메라를 가져다 댔는데, 눈으로 직접 만나는 감동을 따를 수 없다. 손끝을 대면 오랜 시간 묵혀온 그 질감들이 만져질 것만 같은데, 손을 댈 수가 없다. 존재감이란 그런 것이다.
조각을 보러 내려갔을 땐 이미 떠날 시간이 다 되었다. 결국 우린 2시간 동안 회화관에만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의 궁중 화가였던 벨라스케스의 <마르가리타 왕녀>. 그는 이 왕녀의 성장을 많은 초상화로 남겼는데, 이렇게 그리다보면 아마 자신의 딸같은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22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죽을 거라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르느와르의 작품도 만났다. 그의 작품에 목욕하는 여인들의 그림이 많지만, 이 작품이 가장 아름답다. 방에 들어서면 눈에 가득 차도록 큰 그림이 정면에 붙어있는데, 부드러운 연두빛의 풀들이 따스한 느낌으로 왠지 봄이 온 것 같다.
마네의 정물화 두어점. 이름 모를 화가의 유디트. 흑백사진 같던 드가의 그림. 정말이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돌아가야 하는걸. 열흘간의 여행이 끝나는 날이니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은 다독이며 돌아와 공항으로 가야지. 짐을 싸서 공항 버스에 올랐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다. 오랫동안 투병 중이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여행 직전 병세가 악화되어 여행을 취소할까도 했었는데, 다행히 나아진 것 같다고 다녀오라고 허락하신 참이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로밍을 받아 왔는데, 할아버지가 우리 여행이 끝나길 기다려 주셨나 보다. 오랫동안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던 터라 특별히 슬프거나 하진 않았다. 할아버지와는 함께 산 경험도 없고 무뚝뚝하신 분이라 변변한 대화도 나눈 기억이 없다. 부모의 부모가 죽었는데도 내 부모 걱정만 되는 나는 참으로 박정하다.
돌아가는 공항에서 출발할 때 만났던 루프트한자의 정력적인 아저씨를 또 만났다. 역시나 기운차게 종횡무진하고 계셨다. 탑승하길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아저씨가 마이크를 들고 나오신다. "아.아. 여러분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무슨 동네 이장님도 아니고, 기쁜 소식이라니.. " 저희 루프트한자에서 단 3분의 승객분께 국적기를 타고 돌아가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1시간 30분을 더 기다리시면 국적기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대신 이분들께는 40만원의 보상금을 함께 드립니다. 선착순 3분입니다! 선착순!"
아, 말로만 듣던 오버부킹인가 보다. 잠시 술렁이더니 냉큼 3명의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40만원이라는 말에 혹해서 할아버지 장례식도 다 까먹고 앞으로 튀어가려고 했으니 다시 생각해도 정말로 박정하다.
긴 비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발 쭈욱 뻗고 편하게 왔건만 긴 비행이 쉽지만은 않다. 아무리 좋던 여행도 긴 여독 때문에 피곤하게 마련. 손잡이를 돌려 집으로 들어서면, 언제나 이 말이 가장 먼저 나온다. '아, 우리 집이 젤 좋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한 마디를 더 보탰다. '크로아티아도 좀 좋다'
눈에 익은 길을 따라 호텔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예약을 하고 왔던, 이번 여행에선 유일한 호텔이다. 시가지 중심에 있는 호텔들은 이미 풀북이라 구할 수 없어 약간 벗어난 곳에 묵게 되었는데, 시가지로 나가고 보니 무지 가깝다. 룸도 엄청 넓고 깨끗한 게 마음에 들었다.
오후를 보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호텔 바로 앞에 트램 정류장이 있는데, 도무지 트램을 어떻게 타는지 모르겠다. 론리 플래닛에는 표를 사라고 되어 있어서 매점에서 표를 사긴 했는데, 트램에는 표를 넣는 곳도 없고 검사하는 사람도 없고 하다못해 어디 가져다 대는 곳도 없다. 아무도 표를 제시하지 않은 채 타고 내린다. 무임승차하는 몰지각한 한국인되고 싶지 않아서 표를 손에 꼭 쥐고, 누가 검사라도 하면 자랑스럽게 내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정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다음날까지 오며가며 트램을 여러번 탔는데 표는 아무 필요가 없었다. 공짜인가? 그럼 표를 왜 파는 거야? 도무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도 미스터리.
여행을 떠나기 전 자그렙에 대해 들은 이야기들은 대부분 크게 볼 거 없는 도시, 특별한 특색이나 매력은 없는 그저 수도,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도 자그렙에서의 시간을 그리 많이 정해두지 않았는데, 첫 유럽 여행이라는 우리의 특수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어딜 가든 좋지 않으랴, 이걸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들렀던 곳들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올드시티였던 데에 반해, 이곳은 도시. 역사적인 건물들이 많다는 점은 같아도 여긴 16세기 이래 수도로서 기능해 온 만큼 위용이 대단하다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시내 중심가에 내린 순간, 아뿔싸 실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그렙에서의 시간도 넉넉하게 잡아둘 걸. 한 나라의 수도인데 작은 시골마을 정도의 규모라고 생각하다니.. 우리에겐 남겨진 시간은 오늘 오후와 내일 오전. 채 하루가 안되는 시간. 아, 아쉬울 뿐이다.
바쁜 마음을 다잡고 언덕을 올랐다. 언덕 위에 있는 성 스테판 성당은 자그렙의 상징과도 같은 곳인데, 도착해 보니 한쪽 첨탑이 보수공사 중이다. 1242년 착공하여 무려 123년간 지어졌다고 하는데 이 아찔할 만한 높이의 첨탑을 만드려면 100년도 모자랐을 것 같다. 시간이 늦어 안에는 들어가 보질 못하고, 성당 앞에 있는 황금색의 성모 마리아 상을 한참 바라보다 내려왔다.
해가 차츰 기울자 올드타운의 골목들은 여기저기 차를 마시거나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찬다. 거리 한복판까지 색색의 테이블이 놓여지고 큰 TV로 축구를 보며 술을 마신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나왔나 몰라.
다음날 아침 다시 이 골목들로 나왔는데, 어젯밤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간데 없이 정돈되어 있어 어리둥절했다. 조용히 깨어나고 있는 골목을 산책삼아 돌아 다녔다. 유명하다는 건물들은 여기저기 공사중이라 별 감흥이 없었고, 오히려 깔끔하게 채색된 골목길이 훨씬 기분 좋았다.
아기자기한 간판들, 세월이 느껴지는 큰 창문, 장사 준비를 시작하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미니어쳐 샵을 발견하곤 눈이 동그래졌다. 미니어쳐라면 사족을 못쓰는 우릴 알아봤는지 주인 아저씨가 들어와서 보란다. 중세의 병사들부터 근현대의 군인들, 시골 아낙에서 아이들까지, 엄지손가락 하나 크기만도 안되는 이 인형들은 다 아저씨가 만들었단다. 자물쇠로 꽁꽁 넣어둔 인형을 다 꺼내서 보여 주신다. 탐나긴 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그냥 나오려는데, 문옆에 삼총사가 모여 서있는 미니어쳐를 보곤 머리가 확달아올라 버렸다. 무지무지한 가격을 주고 그걸 사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씌웠지 싶다.
골목을 슬렁슬렁 걸어 미마라 박물관에 도착했다. 자그렙에는 국립 고고학 박물관, 근대 미술관, 역사 박물관 등 많은 박물관이 있는데, 그중 가장 규모가 크고 많은 작품을 소장한 곳이 바로 이곳, 미마라 박물관이다. 10시 개관시간에 맞춰 처음으로 박물관에 들어갔다. 오후엔 공항으로 떠날 계획이라 마음이 바쁘다. 웅장하고 한산한 이 박물관은 1층에 유리, 타일, 중국 및 아시아 유물을 전시하고 있고, 2층이 조각, 3층이 회화 전시관이다. 젤 윗층 회화관을 먼저 들어갔는데, 높은 천장에 띄엄띄엄 배치된 그림들을 만난 순간 카리스마가 가득한 존재감에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거의 없는 넓은 공간에서 아침빛을 받으며 그림을 마주하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마치 물속에 들어온 듯 귀가 울린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라 간간히 카메라를 가져다 댔는데, 눈으로 직접 만나는 감동을 따를 수 없다. 손끝을 대면 오랜 시간 묵혀온 그 질감들이 만져질 것만 같은데, 손을 댈 수가 없다. 존재감이란 그런 것이다.
조각을 보러 내려갔을 땐 이미 떠날 시간이 다 되었다. 결국 우린 2시간 동안 회화관에만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의 궁중 화가였던 벨라스케스의 <마르가리타 왕녀>. 그는 이 왕녀의 성장을 많은 초상화로 남겼는데, 이렇게 그리다보면 아마 자신의 딸같은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22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죽을 거라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르느와르의 작품도 만났다. 그의 작품에 목욕하는 여인들의 그림이 많지만, 이 작품이 가장 아름답다. 방에 들어서면 눈에 가득 차도록 큰 그림이 정면에 붙어있는데, 부드러운 연두빛의 풀들이 따스한 느낌으로 왠지 봄이 온 것 같다.
마네의 정물화 두어점. 이름 모를 화가의 유디트. 흑백사진 같던 드가의 그림. 정말이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돌아가야 하는걸. 열흘간의 여행이 끝나는 날이니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은 다독이며 돌아와 공항으로 가야지. 짐을 싸서 공항 버스에 올랐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다. 오랫동안 투병 중이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여행 직전 병세가 악화되어 여행을 취소할까도 했었는데, 다행히 나아진 것 같다고 다녀오라고 허락하신 참이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로밍을 받아 왔는데, 할아버지가 우리 여행이 끝나길 기다려 주셨나 보다. 오랫동안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던 터라 특별히 슬프거나 하진 않았다. 할아버지와는 함께 산 경험도 없고 무뚝뚝하신 분이라 변변한 대화도 나눈 기억이 없다. 부모의 부모가 죽었는데도 내 부모 걱정만 되는 나는 참으로 박정하다.
돌아가는 공항에서 출발할 때 만났던 루프트한자의 정력적인 아저씨를 또 만났다. 역시나 기운차게 종횡무진하고 계셨다. 탑승하길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아저씨가 마이크를 들고 나오신다. "아.아. 여러분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무슨 동네 이장님도 아니고, 기쁜 소식이라니.. " 저희 루프트한자에서 단 3분의 승객분께 국적기를 타고 돌아가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1시간 30분을 더 기다리시면 국적기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대신 이분들께는 40만원의 보상금을 함께 드립니다. 선착순 3분입니다! 선착순!"
아, 말로만 듣던 오버부킹인가 보다. 잠시 술렁이더니 냉큼 3명의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40만원이라는 말에 혹해서 할아버지 장례식도 다 까먹고 앞으로 튀어가려고 했으니 다시 생각해도 정말로 박정하다.
긴 비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발 쭈욱 뻗고 편하게 왔건만 긴 비행이 쉽지만은 않다. 아무리 좋던 여행도 긴 여독 때문에 피곤하게 마련. 손잡이를 돌려 집으로 들어서면, 언제나 이 말이 가장 먼저 나온다. '아, 우리 집이 젤 좋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한 마디를 더 보탰다. '크로아티아도 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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