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6년 12월 28일 헝가리혁명
- History/신문읽기
- 2006/09/11 15:26
- 헝가리혁명, 대한민국
"헝가리의 반공 내란은 26일 봉기민 진압을 위한 군사적 총력 경주의 정부 명령에도 불구하고 헝가리 국내 대부분의 이역으로 확대되었다. 26일 상오 11시 부다페스트를 떠난 후 오스트리아 국경선에 도착한 白而義 외교관 3명은 서부 헝가리의 전역은 봉기민의 수중에 있다고 말하였다. 소련 전차가 참전한 가운데 25일 밤과 26일을 통하여 부다페스트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전개되었다. 시체와 죽어가는 사람들이 거리의 곳곳마다 굴러다니고 있었다고 동외교관들은 보도하였다." [동아일보, 1956년 12월 28일]이 기사는 1956년 헝가리혁명에 대한 수많은 보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사는 지금까지 수천명의 헝가리 시민이 사살되었다는 것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 헝가리 시민들이 혁명정부 수립을 선포하는 전단을 살포하고 있고, 헝가리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돌입했다는 소식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당시 신문에서 1면은 국내정치와 외신 기사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1956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는 이 헝가리혁명에 대한 보도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헝가리혁명에 대한 보도는 부정확한 것이 많았습니다.
이승만 정부나 언론들은 대개 헝가리혁명을 반공혁명, 혹은 반공의거라고 칭하면서 반소반공운동으로 인식하고 선전하였습니다. 이것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의 선전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이승만정부는 여기다 한술 더 떠서 헝가리 국민의 반공투쟁을 격려하고, 북한 주민들의 반공투쟁을 촉구하는 대대적인 관제데모를 벌여나갑니다. 전국 각지에서 수만명이 동원되었죠. 헝가리 혁명을 격려하기 위한 위문품 모집도 전국적으로 벌어집니다. (오른쪽 사진은 영등포국민학교생들의 의연금 기탁 기사, 조선일보, 1956년 12월 10일자)이승만정부의 선전이 비록 정치적인 목적에서 나온 것이고 헝가리사태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었다고 해도, 헝가리혁명은 한국사회에 굉장한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당시 헝가리혁명이 가져다준 충격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죠. 특히 당시 학생이었다면 헝가리혁명이 가져다준 것이 더욱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최근까지 교과서에 '헝가리 소녀...'라는 제목의 경험담이 소개되기도 했었죠.
헝가리혁명은 한국 국민들에게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질 수 있으며 소중한 것인가를 일깨워준 것은 아닐까요? 1960년 4월, 사사오입 개헌과 수많은 부정비리사건들로 썩어빠진 이승만의 독재 앞에서 당당히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헝가리혁명이 가르쳐준 민주주의에 큰 빚을 지고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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