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의 <좌우합작운동의 전개과정과 성격변화>

이번 논문은 정병준의 좌우합작운동에 대한 연구입니다. 좌우합작운동은 강만길이 시작하고 서중석이 정립한 주제입니다. 정병준의 논문은 이들 선행 연구 성과의 연장선상에서 위치하는 현 수준에서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좌우합작운동의 과정과 성격변화에 대한 연구인만큼 평면적인 서술로 지루한 감이 없진 않지만, 이전 연구들보다 더욱 구체적인 역사를 구현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논문을 읽으면서 새롭게 다가왔던 점은 저자의 김규식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동안 김규식은 정치적 카리스마의 부족, 우유부단한 성격 등이 얘기되면서 소극적으로 평가되어왔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논문에서 그가 처음부터 일관되게 중도세력의 정치세력화에 관심이 있었고, 이 세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치세력화를 도모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진은 박헌영과 여운형)

한편 저자는 여운형의 사상적 지향성에 대해 ‘인민전선적 민주주의자’ 내지는 ‘조선식 민주주의자’였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자 자신의 저작인 '몽양 여운형평전'과 유사하게 보이는 맥락입니다. 물론 ‘평전’의 시각이 좀더 극단적인 것이지요. 해방전후 좌익과 우익을 가르는 기준은 원래 미군정의 부정확하고 자의적인 것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박헌영과 친하면 좌익’ 하는 식이죠. 저자의 언급은 우리 연구자들이 한 사람의 사상을 논할 때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라는 의문점을 던져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직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계속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 좌우합작운동 연구는 그 운동 과정에서의 북한의 영향력 행사에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것은 사료의 부족에서 오는 한계입니다. 여운형과 박헌영은 직접 북을 방문하여 김일성과 소군정의 의향을 묻는 모습을 보입니다. 좌우합작운동에 대한 김일성 측과 소군정의 언급이나 당시 북의 정치상황이 여운형과 박헌영에게 미친 영향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인 만큼 앞으로 꼭 규명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정병준은 좌우합작운동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이 여운형과 김규식을 중심으로 한 각 정치세력의 좌우합작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구상을 밝히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미군정과 좌우합작운동의 관계나 국내정치세력과 미군정간의 관계도 불분명했다고 말하죠. 좌우합작운동의 시기별 성격변화 역시 미흡했다고 합니다.

미군정을 주체로..
저자는 좌우합작운동의 주체로 미군정을 부각시켜 여운형, 김규식, 미군정 3자의 입장과 논리, 구체적인 활동을 밝히고, 이들이 좌우익과 맺고 있던 역학관계를 밝히고자 합니다. 또한 입법의원과 좌우합작운동의 관계나 좌우합작위원회의 성격도 이 논문의 주요한 연구 목표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자, 그럼 내용을 한번 살펴보죠. 각 주체세력들이 생각하는 좌우합작운동은 현저히 달랐습니다. 먼저 여운형은 1946년 5월 중단된 미소공동위원회를 남한 정치세력의 통일, 단결을 통해 재개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중도우파 및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을 통한 임시정부 수립에 동의하는 세력을 좌파로 견인해내고자 하였죠.

김규식은 중도좌파와의 연대를 토대로 미군정의 지지를 결합함으로써 중도좌우파 정치세력의 독자성을 확보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남한 내 좌우합작을 완성시키고 미소공위를 전제로 한 남북합작으로 연계시키고자 하였답니다.

미군정은 좌익의 분열을 통해 중도좌파를 미군정측으로 견인해내고, 이들을 중도우파와 결합시킴으로써 미군정의 남한내 정치기반으로 삼으려는 것이었습니다. 미군정의 구상은 단순히 중도좌우파의 결합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기초로 과도적인 입법기구를 수립함에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미소공위에 대한 미국의 입지강화와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양자에 유용할 수 있는 지지세력과 개혁을 창출하고자 하였죠.

좌우합작운동의 진행과정은 먼저 좌, 중도좌, 중도우, 우파가 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 시기에 이들은 민족통일과 미소공위 재개를 통한 통일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지향점에 가장 근접하게 되죠. 그러나 민전 5원칙을 발표하면서 좌익이 좌우합작운동 대열에서 이탈합니다. 여운형은 조선공산당을 좌우합작위원회에 복귀시키고자 했으나 김규식은 중도좌우파만의 합작으로 남한내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시키고자 하였습니다.

미군정이 주도권을 잡다
한편 좌우합작운동에 균열이 생기자 주도권은 미군정에게 넘어갑니다. 이 기회를 통해 미군정은 좌우합작의 결과를 입법기구 수립으로 몰아가려고 하죠. 결국 합작위원회는 우익과 중도좌익의 집결체로 변화합니다. 좌우합작위원회의 좌우합작 7원칙이 발표되면서 우익도 탈락하고 말죠. 이제 좌우합작위원회는 중도좌우익 집결체로 변하고 맙니다. 그러자 미군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본격적으로 입법의원문제를 제기합니다. 이제 좌우합작운동은 굴절되기 시작해 결국 여운형의 이탈로 이어집니다. 김규식을 중심으로 한 좌우합작위원회는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자립하기 위해 지방조직 건설 및 지지정당 창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고 결국 1947년 10월 민족자주연맹의 결성으로 해체되고 맙니다.

저자는 좌우합작운동의 실패요인으로 조선공산당의 편향된 좌우합작운동 반대와 중도좌파에 대한 공격, 미군정의 개입과 입법의원 수립의도를 강조합니다. 이와 함께 좌우합작운동의 중심인물인 여운형, 김규식의 대중적 조직기반 부재, 여운형, 김규식의 입법의원 수립의 동의에 참여가 결정적인 실수였다고 주장하죠. 그러나 좌우합작운동의 출발정신은 국내 정치세력의 계급대 계급 대립구조와 미소의 국제적 영향력을 뛰어넘으려 한 해방 후 민족통일전선 결성 시도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병준, <1946~1947년 좌우합작운동의 전개과정과 성격변화>, 한국사론29,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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