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미군정의 정치세력 재편계획...>

박태균은 기존의 해방3년사에 대한 수정주의적 연구 경향을 두 방향에서 비판합니다. 하나는 기존 연구가 미국의 대외정책사 측면에서 연구되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미군정의 위상 설정이 잘못 되었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미군정의 '정치세력 재편 계획'에 초점을 맞춰 당시 미군정의 정책이 한반도를 어떻게 변화시켰고 그 성격은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논문의 목표로 설정합니다. 이것을 통해 기존의 수정주의적 연구성과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겠다고 합니다.

해방후 한반도는 전반적으로 일제시기 이후 심화되어온 모순을 변혁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습니다. 미국은 이러한 분위기가 소련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였고 직접 점령을 통해 자국에 유리한 상황으로 개편하고자 하였습니다. 미군정은 인민공화국을 반대하고 인공 세력 축출을 목표로 했으며, 현상유지정책을 통해 친일파를 중용하고 한민당을 적극 지지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미군정은 일단 일반명령 1호를 통해 아시아의 민족해방운동을 부정합니다. 또한 인공부인성명을 통해서 인공과 임정의 연합 가능성을 폐기시키고자 하죠. 한편 미약한 우익세력의 강화를 목적으로 자문위원회를 설치하고 한민당 인사들을 대거 등용합니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경찰, 사범, 행정직에 등용되었답니다. 이승만의 귀국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집니다. 우익세력의 친일색을 이승만이라는 명망가를 이용해 탈색시키고자 했던 거죠.

행정위원회 계획안
저자는 미군정이 이러한 정치세력 판도를 재편하기 위해 '행정위원회' 계획을 수립하였다고 말합니다. 행정위원회 계획안에 따르면 미군정은 먼저 행정위원회를 구성하고, 행정위원회와 군정을 통합하여 과도정부를 성립하게 됩니다. 과도정부는 소련, 영국, 중국에게 감독관과 고문의 일부를 파견하도록 요청하며, 행정위원회는 국가수반의 선거를 실시하죠. 그리고 선출된 국가수반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이 이 계획안의 최종단계가 됩니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미군정이 제시한 행정위원회 계획안의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승만을 우익 정치세력 내의 핵심으로 부각시키고자 하였다는 겁니다. 둘째, 행정위원회 계획을 실시하여 통일전선 결성을 추구하는 국내정치구도를 재편하고 통일전선을 저지하고자 하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좌파민족주의 세력을 포괄하여 안정된 지배연합을 만들고자 했다는 거죠.

기존 연구에서 미군정의 행정위원회 계획은 최초의 단정안이었다고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행정위원회 계획을 단순히 단정수립안으로 규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죠. 왜냐면 기존 연구는 국무성과 미군정의 정책상의 차이, 갈등을 과도하게 부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두 기관은 동등한 위상과 역할을 가진 기관들이 아니라는 거죠. 미군정은 국무성에서 정책이 결정되는 것을 돕고, 결정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며, 현지 상황을 유리하게 조성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며,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미국 행정부(여기서는 국무성)라는 설명입니다.

또한 저자는 행정위원회 계획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총체적인 구상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단정노선이나 신탁통치 노선은 한반도 전체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포괄적인 정책을 의미하지만, 행정위원회 계획은 정치세력의 재편문제에 한정된 계획이었다는 겁니다. 결국 저자의 생각은 '행정위원회' 계획이 신탁통치안과 같은 전략적 구상이 아니라, 대한정책의 구체적인 시행방침일 뿐이라고 판단하는 겁니다.

저자는 민주의원의 구성이나 좌우합작위원회도 행정위원회 계획에 따른 조치였다고 설명합니다. 미군정이 민주의원에 부여할 역할은 미군정자문역할을 수행하는 것 외에도 과도정부의 역할까지 부여하고 있죠. 미군정은 이를 통해 임정에서 이승만에게 우익의 주도권을 넘기고자 했으며, 통일전선을 추구하는 국내의 정치구도를 개편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민주의원은 1차 미소공위 결렬 후 그 효용을 다했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미군정은 민주의원 이후 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하여 행정위원회 계획안을 실현하고자 하였습니다. 미군정은 민주의원보다 한국의 정치 여론을 진정으로 대표할 수 있는 '입법자문기구를 위한 선거의 실시 제안'했죠. 그리고 이승만, 김구를 일시적으로 은퇴시켰구요. 중도파를 입법자문기구의 중심에 위치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즉 좌우합작위원회의 역할은 입법기구를 설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군정은 중도파를 정치세력재편의 핵심으로 부각할 의도가 없었습니다. 기왕에 구성된 이승만 중심의 정치세력 구도에 중도파를 포섭하여 좌익세력을 분열시키고 중도파를 지배연합에 포섭하여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던 겁니다.

좌우합작위원회는 미군정이 원래 의도한 바의 정치세력 개편을 이루지 못합니다. 미군정과 좌익민족주의자의 생각이 처음부터 달랐기 때문입니다. 미군정은 1946년 12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라는 입법기구의 설치 이후 좌우합작위원회 역할이 종료했다고 판단합니다. 한편 여운형은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 참여하지 않고 좌우합작운동을 계속적으로 전개하면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다가 암살당하고 마는 거죠.

저자는 수정주의자들이 "미군정이 처음부터 단독정부 수립안을 추진"했고,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관철하려 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반대합니다. 행정위원회 계획은 단정안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또한 미군정은 행정위원회 계획을 통해 안정된 지배연합을 창출하고자 했지만 실패하였습니다. 미군정이 한반도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정치세력을 재편하였던 중요한 주체였음은 사실이지만 절대적인 규정력을 가지고 전적으로 관철시키지는 못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미군정을 주어로 하다
저자 박태균은 미군정과 국무성의 역할을 규정하고 그에 입각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논문이 포괄적으로 미국을 주어로 한 것이었다면 이 논문은 미군정을 주어로 했다는 것이 새롭게 읽힙니다. 저자는 미군정이 행정위원회 계획을 기본으로 해서 한반도의 정치세력을 재편하고자 민주의원, 좌우합작위원회 등과 같은 정책들을 일관되게 구사하였다고 설명하죠. 이러한 서술 역시 매우 매력적이고 신선합니다.

그러나 이 논문의 한계도 보입니다. 먼저 서론에서 제기한 것처럼 이 논문이 미국의 대외정책 위주의 기존 수정주의 연구 성과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단지 미국이라는 주어에서 미군정으로 주어가 바뀐 것일 뿐입니다. 즉 저자 자신도 밝혔듯이 이 한계를 극복하려면 미군정의 정치세력 재편에 대한 한반도 내부 정치세력들의 대응을 고찰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한계는 저자가 알고 있는 것이었으니 서론의 문제제기가 과도했던 셈입니다.

또한 제가 생각하기에 행정위원회 계획은 단지 정치세력 개편을 위한 계획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 계획은 정치세력 재편의도 뿐 아니라 신탁통치를 부정하면서 제시된 또다른 전략적 구상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행정위원회 계획안의 출발은 정치세력개편을 통해 남한내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행정위원회 계획은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미군정이 판단하기에 비현실적인 신탁통치안을 대체할 새로운 계획안이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당시 국무장관은 새로운 구상을 제안하기 보다 소련과의 협상이 먼저라고 반대의 뜻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미군정의 의도와 상관없다해도 국무성은 행정위원회 계획을 신탁통치를 대신하는 새로운 구상으로 인식하였던 것입니다.

국무성과 미군정의 역할을 규정하여 사고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미군정이 그 주어진 역할대로만 움직였는지는 한번 심각히 고려할 만한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군정의 활동에서 월권행위나 의도적 태업은 없었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가 미군정과 국무성의 대립을 소극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바로 여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브루스 커밍스에 대한 오해가 너무 심한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브루스 커밍스는 일제시기의 잔재로 한반도 내의 모순구조가 '혁명 대 반혁명'의 구조로 나타났다고 설명하면서 해방후 미소의 점령으로 이들 외세가 이러한 기본적인 모순 구조에 편승하였다고 설명합니다. 저자는 이것을 외세의 영향을 강조하면서도 국내는 외세와 상관없이 이미 대립구도가 설정되어 있었다는 주장으로 읽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태균, <1945~1946년 미군정의 정치세력재편계획과 남한 정치구도의 변화>, 한국사연구74,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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