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07.15 교토 안의 섬을 찾아서 - 사가노(3)
- Travel/2007 교토
- 2007/08/27 00:23
- 일본>교토>사가노
숙소가 들어가 잠시 숨을 돌렸다가 니손인(二尊院)으로 향했다. 두 본존불을 모시고 있다고 해서 니손인인데, 들어가는 순간 넓직한 정원이 탁 펼쳐진 것이 그동안 지나왔던 사찰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금당 건물은 가로로 활짝 펼쳐진 모양새로 동자승들 1000명도 족히 들어갈 것만큼 넓어서 절간 같기보다는 수련회장 같다. 게다가 대청마루는 또 어찌나 넓은지 데굴데굴 구르면 언제 끝날지 가늠이 안된다. 왠지 감흥이 떨어진다고나 할까. 비까지 내리기 시작해서 더 집중이 안되기도 했고.
컨디션이 나빠서였다. 아침부터 냅다 자전거를 굴렸던 게 이제야 몸에 부담으로 돌아오는 모양이다. 식은땀이 주욱 흐르더니 이마가 서늘해져서 아무 생각도 안나더라. 뇌가 사고하기를 귀찮아하는 상황. 오빠가 옆에서 뭐라 말해도 들리는 건지 뭐라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보고는 놀랐는지 오빠가 나를 끌고 들어가 앉힌다. 아이스커피를 사들고 와 앉은 곳은 토롯코 열차 아라시야마역.
산길을 오르던 산업용 열차가 지금은 관광열차로 변신해서 달리는 곳이다. 뻥 뚫린 창문을 가진 작은 열차가 철커덕철커덕하고 산을 오르는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대견하고 그래서 더 즐거울 테지만, 이미 홋카이도에서 타본 경험이 있어서 우린 타지 않기로 했었다. 그런데 여기 앉아서 기차가 출발하려는 모습을 보니 조금 아쉽다.
아쉬운 맘을 뒤로 하고 다시 힘을 내 일어섰다. 토롯코 아라시야마역 뒤편으로는 약 1km의 대나무숲길이 이어진다. 대나무로 가득찬 1km. 상상이 안된다.
자전거를 끌고 약간 힘들다 싶게 언덕의 정상을 올랐다. 고개를 돌려 내리막길을 쳐다보는 순간, 아.. 하는 탄식이 흘러 나온다. 곧게 뻗은 대나무는 노스탤지어가 느껴지는 빛바랜 초록빛 줄기로 하늘을 향해 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의 바스락거리는 속삭임이 끝도 없이 물결친다. 그 길로 발걸음을 내딛으면 목에 걸려있는 카메라도 옆에서 걷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도 모두 잊게 된다. 그저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사색의 내리막길로 나도 모르게 터벅터벅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무아지경. 청아한 서늘함에 둘러싸인 꿈결같은 길로 접어드는 경험이었다... 만, 모기가 종아리를 물어대는 통에 후다닥 현실로 돌아왔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길이 끝났다. 신기하게도 그 길은 아주 자연스럽게 북적북적한 번화가로 이어졌다. 아마도 아라시야마의 중심가인 듯한 이 거리는 이차선의 좁은 도로지만 관광지의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아, 아라시야마의 분위기란 이런 것이구나. 사가노가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나왔던 수줍은 시골 아가씨 같았다면, 아라시야마는 은근한 세련미가 풍기는 부잣집 아씨 같다. 곱게 단장한 동네길을 구석구석 헤메다니다 자건거를 반납하고 걷기 시작했다.
다시 사가노로 접어드는데 초등학교가 하나 보인다. 일요일인데도 운동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내릴 비가 남았는지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도 저 멀리는 게이트볼을 하시는 어르신들, 수돗가에는 옹기종기 모여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들. 운동장에는 아이들 대 어른팀의 미니 축구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두세번은 더 내쳐 달려야 따라잡을 수 있는 어른들의 발놀림을 따라가느라 꼬마녀석들 바쁘게도 뛰어다닌다.
큰 길을 돌아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자 집들 가운데 작은 논이 펼쳐져 있는데, 글쎄, 논 끝에 예쁜 무지개가 걸려있다. 뭉게구름 위에 걸쳐진 무지개. 빨주노초파남보, 선명하기도 하지. 무지개 본 게 얼마만이더라.
논 앞의 철망에 턱을 괴고 느릿느릿 흘러가는 구름 구경하랴, 멋진 곡선을 그리고 있는 무지개 구경하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참으로 살아가는 건 감동이다. Life is wonderful.
사가노 여행의 일미가 고즈넉한 사찰 기행에 있다면, 아담하게 자리한 골목길 순례는 그 숨은 맛이라 할 수 있다. 교토 시내지만 교외 같은 분위기가 강해서 이곳의 골목길은 호젓하고 여유롭다. 흙색의 벽돌과 지붕이 주조를 이룬 골목길들 사이사이에 작은 논, 할머니가 하시는 슈퍼, 동네 미용실이 숨어 있어 애틋하기까지 하다.
집앞에 내놓은 화초들 구경에 발걸음이 자꾸 멈춰질 무렵, 타닥타닥타닥하고 꼬마 녀석들이 나를 앞질러 뛰어간다. 저 앞에 있는 반찬가게로 들어간 아이들은 엄마 심부름이라도 왔는지 '쓰미마셍' 하고 주인 아줌마를 부른다. 어딘가의 집에서 영락없는 시골개의 짖는 소리가 들린다.
숙소에 다 왔지만 저녁시간까지는 한 시간 가량이 남아 있기도 하고, 골목길의 모습이 너무 정겨워 좀 더 걷기로 했다. 우리 민박집 뒤로는 다이가쿠지(大覺寺)가 있는데 그 옆에 호수도 있다고 하니 거기까지 가볼까.
다이가쿠지 앞 길은 큼직한 집들이 즐비하다. 어마어마한 대문을 지나 현관까지도 차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집들도 제법 되고, 여기저기 세콤의 불빛이 번쩍이는 게 여긴 부자 동네구나 싶다. 천황의 일족이 주지로 있는 다이가쿠지와 어울리는 조합이려나.
역시나 호수도 무지 넓다. 오사와노이케(大沢池)하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 모든 게 큼직해서 연못을 헤엄치고 있는 잉어들도 10인분 정도의 크기이고, 떼로 몰려있는 연꽃잎들도 어린애들 우산 만하다. 이 엄청 넓은 연못을 자기 앞마당 정원인양 바라볼 수 있다니. 사가 천황의 별궁이었다는 다이가쿠지의 규모가 짐작이 된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났더니 민박집 아줌마가 우릴 식당으로 안내하신다. 원래 이 집의 주는 요릿집이고 민박집은 부업같은 모양인데, 도착하니 벌써 테이블 위에 냄비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오늘의 저녁은 나베요리. 접시에는 전골에 들어갈 고기와 생선과 야채들이 한아름 쌓여 있는데, 오~ 냄새가 장난 아니다.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사진으로 남겨 놓지 못한게 아쉬울 따름이다. 예술이었는데... 야들야들하게 익은 고기하며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생선을 젓가락으로 떠서 양념장에 찍어먹을 때의 그 느낌은 말이지, 그거 먹으러 일본 가자고 하면 당장이라도 비행기표 끊을 수 있을 만한 맛.
뿌듯한 포만감으로 밤 산책을 슬렁슬렁.
아쉬운 밤이 또 저무는구나.
컨디션이 나빠서였다. 아침부터 냅다 자전거를 굴렸던 게 이제야 몸에 부담으로 돌아오는 모양이다. 식은땀이 주욱 흐르더니 이마가 서늘해져서 아무 생각도 안나더라. 뇌가 사고하기를 귀찮아하는 상황. 오빠가 옆에서 뭐라 말해도 들리는 건지 뭐라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보고는 놀랐는지 오빠가 나를 끌고 들어가 앉힌다. 아이스커피를 사들고 와 앉은 곳은 토롯코 열차 아라시야마역.
산길을 오르던 산업용 열차가 지금은 관광열차로 변신해서 달리는 곳이다. 뻥 뚫린 창문을 가진 작은 열차가 철커덕철커덕하고 산을 오르는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대견하고 그래서 더 즐거울 테지만, 이미 홋카이도에서 타본 경험이 있어서 우린 타지 않기로 했었다. 그런데 여기 앉아서 기차가 출발하려는 모습을 보니 조금 아쉽다.
아쉬운 맘을 뒤로 하고 다시 힘을 내 일어섰다. 토롯코 아라시야마역 뒤편으로는 약 1km의 대나무숲길이 이어진다. 대나무로 가득찬 1km. 상상이 안된다.
자전거를 끌고 약간 힘들다 싶게 언덕의 정상을 올랐다. 고개를 돌려 내리막길을 쳐다보는 순간, 아.. 하는 탄식이 흘러 나온다. 곧게 뻗은 대나무는 노스탤지어가 느껴지는 빛바랜 초록빛 줄기로 하늘을 향해 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의 바스락거리는 속삭임이 끝도 없이 물결친다. 그 길로 발걸음을 내딛으면 목에 걸려있는 카메라도 옆에서 걷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도 모두 잊게 된다. 그저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사색의 내리막길로 나도 모르게 터벅터벅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무아지경. 청아한 서늘함에 둘러싸인 꿈결같은 길로 접어드는 경험이었다... 만, 모기가 종아리를 물어대는 통에 후다닥 현실로 돌아왔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길이 끝났다. 신기하게도 그 길은 아주 자연스럽게 북적북적한 번화가로 이어졌다. 아마도 아라시야마의 중심가인 듯한 이 거리는 이차선의 좁은 도로지만 관광지의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아, 아라시야마의 분위기란 이런 것이구나. 사가노가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나왔던 수줍은 시골 아가씨 같았다면, 아라시야마는 은근한 세련미가 풍기는 부잣집 아씨 같다. 곱게 단장한 동네길을 구석구석 헤메다니다 자건거를 반납하고 걷기 시작했다.
다시 사가노로 접어드는데 초등학교가 하나 보인다. 일요일인데도 운동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내릴 비가 남았는지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도 저 멀리는 게이트볼을 하시는 어르신들, 수돗가에는 옹기종기 모여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들. 운동장에는 아이들 대 어른팀의 미니 축구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두세번은 더 내쳐 달려야 따라잡을 수 있는 어른들의 발놀림을 따라가느라 꼬마녀석들 바쁘게도 뛰어다닌다.
큰 길을 돌아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자 집들 가운데 작은 논이 펼쳐져 있는데, 글쎄, 논 끝에 예쁜 무지개가 걸려있다. 뭉게구름 위에 걸쳐진 무지개. 빨주노초파남보, 선명하기도 하지. 무지개 본 게 얼마만이더라.
논 앞의 철망에 턱을 괴고 느릿느릿 흘러가는 구름 구경하랴, 멋진 곡선을 그리고 있는 무지개 구경하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참으로 살아가는 건 감동이다. Life is wonderful.
사가노 여행의 일미가 고즈넉한 사찰 기행에 있다면, 아담하게 자리한 골목길 순례는 그 숨은 맛이라 할 수 있다. 교토 시내지만 교외 같은 분위기가 강해서 이곳의 골목길은 호젓하고 여유롭다. 흙색의 벽돌과 지붕이 주조를 이룬 골목길들 사이사이에 작은 논, 할머니가 하시는 슈퍼, 동네 미용실이 숨어 있어 애틋하기까지 하다.
집앞에 내놓은 화초들 구경에 발걸음이 자꾸 멈춰질 무렵, 타닥타닥타닥하고 꼬마 녀석들이 나를 앞질러 뛰어간다. 저 앞에 있는 반찬가게로 들어간 아이들은 엄마 심부름이라도 왔는지 '쓰미마셍' 하고 주인 아줌마를 부른다. 어딘가의 집에서 영락없는 시골개의 짖는 소리가 들린다.
숙소에 다 왔지만 저녁시간까지는 한 시간 가량이 남아 있기도 하고, 골목길의 모습이 너무 정겨워 좀 더 걷기로 했다. 우리 민박집 뒤로는 다이가쿠지(大覺寺)가 있는데 그 옆에 호수도 있다고 하니 거기까지 가볼까.
다이가쿠지 앞 길은 큼직한 집들이 즐비하다. 어마어마한 대문을 지나 현관까지도 차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집들도 제법 되고, 여기저기 세콤의 불빛이 번쩍이는 게 여긴 부자 동네구나 싶다. 천황의 일족이 주지로 있는 다이가쿠지와 어울리는 조합이려나.
역시나 호수도 무지 넓다. 오사와노이케(大沢池)하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 모든 게 큼직해서 연못을 헤엄치고 있는 잉어들도 10인분 정도의 크기이고, 떼로 몰려있는 연꽃잎들도 어린애들 우산 만하다. 이 엄청 넓은 연못을 자기 앞마당 정원인양 바라볼 수 있다니. 사가 천황의 별궁이었다는 다이가쿠지의 규모가 짐작이 된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났더니 민박집 아줌마가 우릴 식당으로 안내하신다. 원래 이 집의 주는 요릿집이고 민박집은 부업같은 모양인데, 도착하니 벌써 테이블 위에 냄비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오늘의 저녁은 나베요리. 접시에는 전골에 들어갈 고기와 생선과 야채들이 한아름 쌓여 있는데, 오~ 냄새가 장난 아니다.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사진으로 남겨 놓지 못한게 아쉬울 따름이다. 예술이었는데... 야들야들하게 익은 고기하며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생선을 젓가락으로 떠서 양념장에 찍어먹을 때의 그 느낌은 말이지, 그거 먹으러 일본 가자고 하면 당장이라도 비행기표 끊을 수 있을 만한 맛.
뿌듯한 포만감으로 밤 산책을 슬렁슬렁.
아쉬운 밤이 또 저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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