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14 교토 안의 섬을 찾아서 - 오하라 산젠인

무던히도 떼어놓고 가려고 노력했건만, 결국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지겨운 녀석, 4호 태풍 마니. 갑작스럽게 계획된 여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설레는 여행이라구. 태풍이라니..
오사카에 내려 기차를 타고 교토로 향하는데, 이놈의 비가 그칠 줄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내리는 비도 그리 나쁘진 않다. 출장 간 남편을 만나러 혼자 가는 여행, 교토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남편이 있으니 비가 좀 내려도 괜찮다.

다음날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래도 태풍이 올 거라는 예보에 비하면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었다. 끈적끈적하게 푹푹 찌는 여름의 일본 날씨에 비한다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기온 마츠리 준비로 분주한 시조역을 뒤로 하고 지하철을 탔다. 교토의 시내 유명 관광지는 예전에도 가본 적이 있으니, 이번 여행은 좀 한적한 곳을 골라 다니려고 한다. 교토 속의 그 많은 절들 하나하나를 다 둘러보고 다니려면 몇 달이어도 부족할 테지만, 욕심을 버리고 이번 여행에는 교토 안팎의 섬 같은 곳들을 찾아보는 걸로 만족하련다. 그 첫 목적지는 교토 교외의 오하라(大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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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라는 교토 북동쪽 산자락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다.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면 서늘한 산공기가 허리에 턱 걸쳐진 마을이 나타난다. 누구라도 작은 사찰을 짓고 싶을 것 같은 동네이다.
오르는 산길 따라 산수국이 한아름 피었는데 그 꽃잎 한 장 한 장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물을 잔뜩 먹은 푸른 꽃들이 탐스런 수국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맛이 있다. 다투듯 피어나는 수국의 풍성함이 한참 좋더니 요즘은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산수국이 눈에 들어오더라. 나이가 들어 그런가. 기실 이 푸른 꽃잎은 진짜 꽃이 아니다. 이 녀석들은 꽃받침이고 실제 꽃은 가운데 오밀조밀 모여있는 작은 알갱이들.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화려하게 피어있는 꽃받침들이 가끔은 안쓰러워 보인다. 아무리 지켜봐도 벌 하나 날아와 앉지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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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차조기밭은 지나 산길을 오르니 곳곳에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돌을 깎아 만든 여인, 나무에 치마를 두른 여인네, 표지판에 그려진 여인, 작은 인형으로 만들어진 여인. 깊은 산중에서 땔감행상을 다니던 가난한 여인의 고단한 삶은 이제 인형으로 남았다. 황족들에 의해 운영되던 화려한 사찰들로도 가난했던 오하라의 삶이 가려지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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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접고 산젠인(三千院)으로 들어섰다. 이네들의 절은 법당들의 대청마루가 널찍해서 꼭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들어갈 수 있게 해놓았다. 마치 먼 친척집 방문하듯이 신발을 잘 벗어두고 조심조심 들어서니 긴 회랑 밖으로 초록빛 정원이 펼쳐지고 있다. 습기가 많은 산자락이다 보니 잔디가 아니라 모두 이끼이다. 비를 맞아 더욱 채도가 높아진 초록빛 정원에 우뚝우뚝 삼나무가 서있고, 곳곳에 작은 연못, 이끼가 낀 돌탑까지, 하, 말이 필요없다. 모두들 대청마루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고즈넉이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자니 저도 모르게 허밍이 흘러나온다. 오하라 일대의 사찰에서 음악염불이 발전했다는데 그 이유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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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앉아 있다가 그 정원으로 나갔다. 건너편의 극락왕생원도 멋진 건물이고 그 안에 모셔져 있다는 아미타삼존상도 국보라고 하던데, 눈은 정원에 펼쳐진 초록빛에서 떼어질 줄 모른다. 작은 연못을 둘러싸고 펼쳐진 이끼밭에는 불룩불룩 작은 돌들이 솟아 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작은 지장보살들이다. 어깨에 이끼는 잔뜩 이고서 서로 기대고 있는 작은 지장은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지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바라보고 있는 나도 절로 입술끝이 올라간다. 그 앞에 턱을 괴고 누워 있는 지장의 해맑은 미소와 큰 머리 때문에 또 한번 웃고, 조용히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는 지장 때문에 다시 한번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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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따라 오르면 수국의 정원이 있는데, 언덕의 한 비탈이 온통 수국이다. 수국의 꽃 색깔은 토양의 성질에 따라 다르다고 하던데, 여긴 온통 푸른 수국 천지인 것이 토양이 산성이어도 보통 강한 산성이 아닌가 보다. 금색부동당을 돌아 관음당까지 오르는 길이 다 수국인데, 마침 마주보는 곳에 쉬어가는 공간들이 있어 꽃구경하기엔 적격이다. 앉아서 꽃구경을 하고 있는데 웬 아주머니께서 찻잔을 내미신다. 오하라의 명물이라는 차조기차라는데, 감사히 받았지만 짭짤한 맛 때문에 차가 아니라 뜨뜻한 바닷물 먹는 느낌.
그러나, 비오는 날 꽃구경이 어지간히 좋았는지, 뽀얗게 사진도 예쁘게 나온다. 맨날 눈감은 사진만 찍는 줄 알았는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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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당을 돌아 내려가는 길 한켠에는 투박하게 못생긴 부처님이 한분 있다. 우아하고 말끔하게 포장된 귀족적인 사찰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길 구석 작은 지붕 밑에 버려진 듯 있는 것도 다 그럴만하다. 가난한 사람들, 국보라는 아미타삼존불 감히 쳐다볼 생각도 못하고 조용히 이 오솔길로 들어왔겠지.
부처님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마지막 선물이 또 하나 등 뒤에 숨어 있었다. 맞은 편 바위 위에 올라앉은 작은 지장. 고개를 갸우뚱하고 잠들어 있는 지장보살 옆에는 누군가 꺾어놓은 푸른 수국 꽃다발이 놓여져 있다. 하하, 금방이라도 침이 똑 떨어질 것 같은 입술을 해서는 잘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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